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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토크②]윤용일 코치, "제자들이 존경받는 선수가 되기를..."
김진건 기자 ( jinkun@mediawill.com ) | 2020-03-29 오전 8:46:12
제자들을 자랑스러워한 윤용일 코치

맛있는 토크 1편에서 테니스와의 만남을 설명했던 윤용일 코치의 두 번째 시간은 자신의 전성기를 함께했던 사람들과의 이야기이다.


국가대표로서의 활약상… 선의의 경쟁자 이형택


기회를 받은 윤 코치는 우리가 알듯이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특히 국가대표로서 펼친 그의 활약은 유독 인상 깊었다.


98 방콕 아시안게임에서는 단체전 금메달과 함께 단식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며 2관왕에 올랐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단식 우승이었다.


그는 "여전히 왜소한 모습에 내가 경기에서 이길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뒤집는 것이 좋았다. 나름의 쾌감이 있었다”라고 그때의 기분을 전했다. 


아시안 게임 금메달 획득으로 인해 병영 문제가 해결되는 등 한국 테니스 발전에 큰 도움을 줬지만 윤 코치가 가장 기억에 남는 국제 경기는 바로 데이비스컵이었다.


그는 “97년 데이비스컵 한일전이었다. 한국에서 열렸는데 일본에는 에이스 마쓰오카가 있었다. 역시나 사람들은 이미 진 경기로 여겼다. 경기도 펼치기 전에 모두가 졌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분위기였다”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그 평가를 보기 좋게 뒤집었다.


설 명절과 겹쳤던 시기이기에 관중도 많았고 모두가 축제처럼 즐거워했다. 그때 그 희열을 윤 코치는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데이비스컵만큼 윤 코치에게는 떼어낼 수 없는 한 선수가 있다. 바로 한국 테니스의 상징이었던 이형택 선수다. 윤용일 코치와 함께 삼성증권에서 활약했던 이형택은 중요한 경기에서 윤 코치에 게 가로막히는 모습을 보였다.


윤 코치는 “내가 (이)형택이의 앞길을 막는다는 소리도 들었다. 하하. 그런데 그런 형택이가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었었다. 원래도 잘했지만 뭔가 한 지점을 넘지 못했던 형택이는 끝내 2000년 US오픈 16강이라는 성적까지 거두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뒤집었다”라며 뿌듯한 목소리로 전했다.


이렇듯 윤 코치와 이형택은 서로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발전했다. 그들은 3년 동안 같은 방을 썼을 정도로 각별했다.


특히 윤 코치는 이형택 선수의 프로다움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우리 둘 다 전례가 없었기 때문에 프로는 어때야 하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나는 몸 관리에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형택이는 달랐다. 특히 US오픈에서 성적을 낸 뒤에는 완전한 프로의 모습으로 변했고 행동했다. 나도 그때 몸 관리를 충실히 하며 프로답게 행동했다면 100위권 안까지는 진입하지 않았을까”라며 아쉬움도 전했다.


그리고 윤 코치는 은퇴 후 이형택의 코치로 활동하며 2007년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고 세계랭킹인 36위(이 기록은 2018 년 정현에 의해 깨졌다)를 함께 세웠다.


“제자들이 뛰어난 선수이자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윤용일 코치는 한국 테니스의 자산이다. 그 이유는 그가 성장시킨 선수들이 투어 선수로서 활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연 가장 유명한 선수는 정현이다.


2013년부터 정현을 맡기 시작한 윤 코치는 2018년까지 5년 동안 정현과 함께했다. “(정)현이는 어려서부터 남달랐다. 배포도 컸고 나이에 맞지 않게 어른스러웠다.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표현하는 등 ‘뭐라도 할 놈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라며 제자를 칭찬한 윤 코치는 “코치로서 내 제자가 형택이의 36위라는 기록을 깨는 것이 목표였다. 물론 현이가 그 기록을 깼지만 그때는 내가 함께하던 시기가 아니었다”라며 아쉬움도 함께 전했다.


정현과 결별 후 윤 코치는 휴식기를 가졌다. 6개월간 푹 쉬었다. 늦잠도 자고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을 만나며 휴가를 보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자 오히려 컨디션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내 몸이 이미 투어 일정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쉬었음에도 잠을 제대로 못 자고 몸이 조금씩 고장난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이후 그는 권순우의 코치로도 1년간 활동했었다.

 

윤 코치는 선수들이 슬럼프에 빠지는 시점이 오면 꼭 실행하는 것이 있다. 바로 휴식의 시간을 주는 것이다.


“나도 선수 시절 테니스가 워낙 안 됐을 때가 있었다. 테니스를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할 때였다. 그때 코치님이 원하는 만큼 휴식을 취해보라고 하셨고 한 달 정도 지나자 자진해서 다시 테니스를 시작했다. 순우도 그런 시기가 온 것 같아 제주도로 가서 마음껏 쉬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순우는 3, 4일 만에 올라왔다. 너무 빨리 와서 놀랐다. 하하”라고 전한 동시에 그러한 시간이 필요한 시기를 정확히 보는 것도 코치의 능력이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끌어 나갈 두 선수를 맡았던 윤 코치는 지금 함께하고 있는 이덕희까지 100위 안에 진입 한다면 원이 없을 것 같다고 전했다.


 
정신없이 살았던 만큼 시간의 흐름은 무서웠다. 어느새 윤 코치는 50대가 가까워졌다.


그는 “백발까지 하고 싶지만 요즘은 고민이 많다. 체력적으로 확실히 떨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도 2년 정도는 계속 투어 생활을 이어갈 생각이지만 선수들의 경기 전 준비를 도와줄 때도 버거울 때가 있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싶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가족도 고민의 이유 중 하나이다. 그는 “아내의 든든한 내조가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오지 못했다. 국내 코치 제안을 받았을 때도 오히려 아내가 더욱 도전해 보라며 힘을 줬다. 그런데 지금 국내에 있다 보니 아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그런 소소한 즐거움도 좋더라”라며 “그래서 꼭 현장에 있는 투어 코치일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설사 2년 정도 지난 뒤 투어를 다니지 못하더라도 내가 그동안 쌓은 경험을 토대로 투어에 도전하는 선수들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 라고 다짐했다. 


이렇듯 그는 이미 뛰어난 선수들을 키웠으며 한국 테니스 발전에 큰 일조를 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제자들이 어떤 선수가 되기를 바라고 있을까.


이에 대해 윤 코치는 “프로로서 실력도 중요하지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 내 기준이지만 그동안 선수들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비유해서 문제점들을 지적했었다. 하지만 남에게 피해를 주는 부분에서는 강하게 이야기했었다. 코트 안에서는 누구보다 열정이 넘치지만 밖에서는 친절하고 예의도 바른 그런 훌륭한 선수들로 자라기를 바란다”라고 답했다.


윤 코치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는 누구보다 냉정했지만 제자들과 가족 이야기에는 따뜻한 미소를 보였다. 한국을 빛낸 선수들과 선수로서 경쟁하며 코치로서 함께했던 윤용일 코치. 그가 쌓아 둔 경험과 지식들은 한국 테니스의 자산으로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기사 전문은 테니스코리아 4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글= 김진건 기자(jinkun@mediawill.com), 사진= 김범석(스튜디오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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