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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시들해진 클레이코트, 명성 되찾을 수 있을까?
전채항 객원 기자 ( loveis5517@tennis.co.kr ) | 2019-06-07 오전 11:18:53
현란한 랠리로 대표되는 클레이코트 시즌의 피날레를 장식할 프랑스오픈이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다.
 
언제부턴가 클레이코트 시즌이 짧아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단지 기분 탓일까? 클레이코트 시즌이 푸대접 받고 있다고 단정 짓기 전에 현주소를 먼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올 시즌 기준 코트별 ATP투어는 다음과 같다.
 
 
대회 개수만 보더라도 클레이코트 대회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데 2018년까지 4월 말에 열리던 이스탄불컵이 종료되고 다른 시기에 하드코트 대회가 신설되면서 또 하나의 클레이코트 대회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클레이코트 대회가 감소하는 원인 중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시장 환경의 변화 즉 소비자와 공급자의 기호도 변화가 가장 크다. 쉽게 말해 시청자와 대회 관계자가 클레이코트보다는 하드코트를 선호하는 가운데 현 시장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디어가 무엇보다 하드코트를 강력히 원하기 때문이다.
 
서브 앤 발리로 대표되는 잔디코트가 전성기를 이뤘던 1970~1980년대를 지나 랠리가 뛰어난 스트로크형 선수들이 강세를 보인 1990~2000년 이후 파워 넘치는 서브와 강력한 한 방이 주를 이루는 2010년대로 넘어오면서 선수들은 대체로 클레이코트보다는 하드코트를 선호하며 두 대회가 함께 열릴 경우 하드코트로 몰리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여기에 더해 대회 관계자들은 관리가 어려운 클레이코트 대신 빠른 보수와 운영이 가능한 하드코트를 선호하는 흐름이 조성됐고 랠리가 쉽게 끝나버리는 무기력한 플레이를 방지하고자 하드코트 표면을 느리게 만드는 조치를 통해 클레이코트의 매력을 빼앗아오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시장의 자본을 쥐락펴락하는 미디어가 상대적으로 경기 시간이 짧고 공의 움직임이 시각적으로 보기 편한 파란색의 하드코트를 선호하며 코트 표면의 대세는 자연스럽게 하드코트로 넘어갔다. 따라서 클레이코트 대회 수의 감소는 투어 운영진의 각박한 차별이라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미디어가 하드코트를 선호하면서 클레이코트 인기도 사그라졌다
 
클레이코트 대회는 제대로 대접받고 있는가?
이 또한 의문의 여지가 남는 대목이나 이에 대한 반박 역시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볼 이유가 있다. 일단 대접을 제대로 받고 있는지에 대한 가장 쉬운 접근 방식은 바로 클레이코트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이 랭킹에서도 같은 대접을 받느냐를 기준으로 볼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 근거는 연중 클레이코트 대회의 개최 시기를 보면 알 수 있다. 실질적으로 호주오픈이 끝나는 2월부터 윔블던 종료 후 한 달간, 즉 7월 중순까지 약 5개월 동안 클레이코트 대회가 군데군데 배포되어 있어 얼핏 보면 클레이코트 시즌이 매우 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드코트 대회 시즌과 잔디코트 대회 시즌이 중간중간 섞여있어 비연속적인 시즌이 이어지고 있다.
 
즉, 클레이코트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선수들이 중간중간 하드코트와 잔디코트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선수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을 펼치기 때문에 랭킹 면에서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군다나 이 시즌에 즐비한 하드코트 대회에 매우 높은 랭킹 포인트가 배정되어 있어 클레이코트 스폐셜리스트들은 정말 말 그대로 발이 안 보일 정도로 뛰어다녀야 높은 랭킹을 유지할 수 있다.
 
실례로 아무리 2월 한 달간 남미 클레이코트 대회를 휩쓸고 다녀도 다음 달 중동 하드코트 대회에서 밀리면 랭킹 상승세는 바로 끝나는 셈이다.
 
하지만 앞서 얘기했듯이 이에 대한 반박 역시 무시할 수 없다. 클레이코트 선호자가 클레이 시즌이 연속으로 이어지지 않아 랭킹 상승세를 유지하는 것이 하드코트 전문가보다 불리하다고 주장할 수는 있으나 이는 무엇보다 클레이코트의 특성 때문이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지어진 수많은 하드코트 경기장에 비해 먼지가 날리는 클레이코트는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실외 코트를 사용할 수밖에 없어 날씨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런 의미에서 전 세계적으로 열리는 시즌을 감안하여 클레이코트 대회는 한 시기에 몰아서 열리기 어려운 구조다.
 
관리 어려움 역시 클레이코트를 회피하는 이유 중 하나다
 
클레이코트 대회를 다수 개최하는 남미와 유럽이 계절적으로 정 반대에 위치하고 있기에 남미 대회가 2월에 집중된 반면 유럽 대회는 5~7월에 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실내 클레이코트 대회로 전환하여 시기적 차이를 줄이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유 또한 존재하며 ATP와 WTA에서 클레이코트 시즌의 집중도를 좀 더 높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는다.
 
클레이코트 대회의 인기를 높여야 하는 이유는?
다소 아쉽지만 클레이코트 시즌의 홀대를 굳이 되짚어 봐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클레이코트를 사랑하는 팬들의 존재, 테니스가 탄생하던 시절부터 함께해 온 역사적인 의미와 더불어 구체적인 이유를 몇 가지 떠올려 본다면 다음과 같다.
 
먼저 ‘흙신’이라 불리며 클레이의 제왕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어느덧 30대 중반의 나이와 각종 부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재를 과시하며 프랑스오픈 11회 우승 등 믿기 힘든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이제는 그가 없는 클레이코트의 다음 장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언젠가 다가올 나달의 공백을 그 어떤 선수도 대체할 수 없겠지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투어 운영진의 노력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물론 강제적 또는 인위적으로 특정 선수를 ‘포스트 나달’로 키울 순 없겠지만 그런 류의 선수들이 수면 위로 떠올라 빛을 발하게 하는 것은 운영진이 할 수 있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클레이코트가 인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포스트 나달’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여기서 떠오르는 것이 바로 ‘넥스트 젠(NEXT Gen)’ 브랜드다. ATP는 몇 년 전부터 일명 ‘빅 4’가 자리를 내준 후의 세대교체를 염두하고 거의 주입식 교육과 같이 ‘넥스트 젠’을 끊임없이 홍보해왔는데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팬들에게 받아들여져 이제는 굳이 이름 옆에 ‘넥스트 젠’ 수식어가 없더라도 20대 초반 또는 그보다 어린 선수들이 나타나면 ‘넥스트 젠’이 떠올라 투어의 미래 모습을 기대하게 된 것이다.
 
‘넥스트 젠’이 투어의 큰 그림이었고 마치 학원 강의와 같았다면 이제는 세밀하게 선수의 특징을 알아보고 집중적으로 관리하는 과외와 같은 기법이 추가되면 좋지 않을까 싶다. ‘넥스트 젠’급 상위 랭커들에 대한 비판 중 하나가 선수들이 너무 비슷한 플레이를 한다는 것인데 클레이코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에 대한 주목도를 높여 톱스핀, 드롭샷, 슬라이딩 등 테니스의 감칠맛 나는 요소를 더욱 홍보하고 테니스의 이러한 다양성을 강조한다면 테니스의 인기 또한 늘어날 수 있을 것이다.
 
클레이코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늦깎이 스타가 많다. 최근 데뷔 후 첫 투어 타이틀을 획득한 두산 라요비치(세르비아), 귀도 펠라(아르헨티나) 등의 스토리가 더 강조된다면 ‘넥스트 젠’과 함께 좀 더 풍부한 스토리텔링이 가능할 것이다.
 
과거 알렉스 코레챠, 알베르토 베라사테기(이상 스페인), 가스톤 가우디오, 기예르모 코리아(이상 아르헨티나), 페르난도 곤잘레스(칠레) 등 수 많은 클레이코트 스페셜리스트들이 톱10급 활약을 펼치며 투어의 재미를 배가시켰던 점을 되새기며 이러한 선수들의 소중함을 투어가 반드시 생각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다른 이유는 좀 더 현실적인 이유인데 바로 ATP투어의 향후 실적과 이를 위한 마케팅 효과를 위함이다. ATP투어 대회 중 가장 권위 있고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최고의 대회인 ATP투어 파이널은 시즌 전체 실적 중 무려 12%를 차지할 만큼 막강한 티켓 파워와 광고 효과를 불러모으고 있다.
 
지난 2009년부터 11년째 영국 런던에서 펼쳐지고 있는 ATP투어 파이널은 2021년부터 이탈리아 토리노로 개최지를 옮길 예정이다. 하지만 아무리 해외여행이 활발해지고 테니스 대회를 찾는 팬들의 국적이 다양해졌다고 한들 여전히 코트를 찾는 대부분 관중은 대회가 열리는 해당 국가의 팬들이 대다수다.
 
영국의 경우 윔블던의 고장으로서 앤디 머레이(영국)가 부상 직전까지 거의 매년 빠짐없이 출전하며 홈 팬들의 열광을 이끌어냈다. 더군다나 대회가 열리는 O2 아레나의 스펙타클한 쇼적인 요소는 마치 공연을 보는듯한 착각을 이끌어내며 팬들과 미디어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팀이 차세대 클레이 황제로 주목 받고 있지만 나달만큼의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토리노의 상황은 어떠한가? 일단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 토리노는 테니스와 친숙한 도시가 아니며 토리노 공항이 영국 히드로 공항처럼 셀 수 없는 커넥션을 자랑하는 국제선 직항 비행기의 메카라고 보기도 어렵다. 단, 철도가 매우 잘 갖춰진 나라이고 로마와 나폴리에 이어 인구 약 90만명의 이탈리아 제3의 도시라는 점이 약간의 걱정을 덜게 한다.
 
지리적인 특성보다 더 중요한 이탈리아 테니스의 현주소는 남자의 경우 제3의 전성기를 맞이한 양상이다. 포그니니가 놀라운 상승세를 보이며 12위까지 진입, 40여년 만에 남자 테니스 톱10의 기회를 맞이함은 물론 지난해 프랑스오픈에서 4강까지 오르는 파란을 일으킨 마르코 체키나토를 비롯해 마테오 베레티니, 로렌조 소네고 등이 두각을 나타내며 이탈리아 테니스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
 
이러한 이탈리아 남자 테니스의 고무적인 분위기가 ATP투어 파이널의 흥행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만약 포그니니와 같은 인기 스타가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다면 이보다 더 좋은 시나리오는 없을 것이다.
 
단, 지금 제3의 전성기를 이끄는 이탈리아 선수들이 클레이코트 스페셜리스트들이고 ATP투어 파이널이 그동안 실내 하드코트에서 열렸다는 점은 이탈리아 팬들의 기대와는 다소 동떨어진 그림이기에 과연 그들의 발길을 얼마나 유혹할 수 있을지 다소 걱정이 된다. 
 
클레이코트 시즌의 인기를 높일 방법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방법은 앞서 언급한 투어 스케줄 조정일 것이다. 지금과 같이 2월부터 7월까지 산발적으로 분산된 클레이코트 대회를 좀 더 압축적으로 모을 수 있다면 선수들이 랭킹 포인트를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게 되는데 이는 대중의 관심을 더욱 끌어모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한때 논란의 중심에 섰던 토마스 무스터(오스트리아)와 같이 클레이코트 대회 성적만으로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다면 이 또한 흥미롭지 않을까?
 
또한 ATP투어 1000시리즈 몬테카를로마스터스를 다시 필수 출전 리스트에 올려놓는 것이다. 몬테카를로마스터스는 다른 8개의 1000시리즈와는 달리 선수들이 필수 출전해야 하는 대회가 아니다. 따라서 앤디 로딕(미국), 로저 페더러(스위스), 존 이스너(미국)와 같은 하드코트 선호 선수들은 이 대회를 건너뛰곤 했다.
 
이 대회가 홀대를 받는 이유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시즌을 앞두고 ATP가 몬테카를로마스터스와 함부르크오픈을 예고 없이 ATP 500급으로 격하시키려고 했고 이에 반발한 두 대회가 ATP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결국 법적 다툼으로 이어지게 됐는데 함부르크오픈은 끝까지 소송을 이어가다가 패소하며 500시리즈가 된 반면 몬테카를로마스터스는 ATP와 합의에 성공하며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다.
 
필수 출전 규정은 적용받지 않되 상금을 올리고 마스터스라는 칭호를 유지하는 중재안에 합의한 것이다. 실제 몬테카를로마스터스는 다른 1000시리즈보다 많은 상금뿐만 아니라 수려한 코트의 경관과 모든 이들을 만족시키는 대회 운영으로 많은 선수의 사랑을 받고 있다.
 
몬테카를로마스터스를 필수 출전 대회로 복귀시키는 것이 클레이코트의 부활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왜 10년 전 그런 결정이 이뤄진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설왕설래하지만 분명한 것은 몬테카를로는 다른 1000시리즈보다 오히려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나달이 프랑스오픈과 마찬가지로 무려 11차례나 우승하며 거의 홈 코트 수준을 자랑하여 다른 선수들이 맥을 못 추고 있지만 이 대회를 필수 출전 대회로 복귀시켜 매년 불참하는 톱 선수들까지 모을 수 있다면 화려해진 라인업으로 팬들의 관심도 더 유도하고 조금 더 공정한 랭킹 경쟁이 되어 직후 대회들까지 관심이 이어지는 시너지 효과를 낳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글= 전채항 객원기자, 사진= 테니스코리아, GettyImagesKorea
 
[기사제보 tennis@tenni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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