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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한 또 다른 생존법 ‘복식’
전채항 객원 기자 ( loveis5517@tennis.co.kr ) | 2019-04-24 오후 4:43:48
복식 세계 최강조 마이크와 밥 브라이언 형제. 사진= GettyImagesKorea
테니스 선수가 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자신이 복식 전문 선수가 될 것이라고 일찍이 진로를 정한 이는 없을 것이다. 물론 자신의 뛰어난 발리 능력과 네트 앞에서의 압도적인 실력을 일찍이 깨우쳤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테니스 라켓을 잡은 어린 시절부터 그 누구나 단식 선수로서 그랜드슬램 우승을 이루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복식 전문 선수는 이러한 감성적인 면과는 전혀 반대의 이유로 등장하는데 모든 이가 예상하듯 바로 수입, 쉽게 말해 생계유지와 큰 관련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돈을 버는 것 외에 테니스라는 운동을 너무나 사랑하는 나머지 자신의 인생을 바치기 위해 복식 전문 선수가 되는 것은 ‘플랜 B’가 되기도 한다.
 
과거 테니스에 ‘복식 스페셜리스트(Doubles Specialist)’라는 단어가 과연 존재했었는지 의문이다. 그 답을 찾기 위해 과거와 지금의 테니스 현실을 비교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에는 지금과 같이 상금 규모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규모가 아니었기 때문에 선수들은 더 많은 상금 축적을 위해 더 열심히 뛸 필요가 있었다.
 
그랜드슬램 중 가장 부자 대회로 일컬어지는 US오픈의 경우 지난해 총상금이 약 550억원이었고 이중 단식 우승자가 약 40억원을 받았지만 10년 전에는 총상금이 약 220억원, 20년 전인 1999년에는 약 180억원, 그보다 10년 전인 1989년에는 약 60억원 정도였으니 과거 대비 현재 상금이 얼마나 상승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물가 상승률도 반영해야겠지만 그보다 더 크게 테니스 시장 자체가 커졌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결과다.
 
테니스 선수들은 단식도 중요하지만 톱 선수들이 아닌 이상 초반 탈락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어 또 다른 생계 수단이 필요했고 그들이 선택한 것이 바로 복식이었다. 또한 과거 투어 스케줄은 지금처럼 매우 바쁘게 돌아가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서브 앤 발리로 대표되는 리드미컬한 플레이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매우 육체적인 플레이에 의존하지 않아 체력적으로 덜 부담이 된 것도 선수들의 복식 참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단식, 복식, 혼합복식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 달성한 나브라틸로바(오른쪽)는
단식에서 167회, 복식에서는 177회 우승을 차지하는 등 전천후 활약을 펼쳤다
 
따라서 과거에는 지미 코너스(미국),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미국), 슈테피 그라프(독일), 스테판 에드베리(스웨덴) 등 단식 세계 1위 선수들을 비롯 톱10 다수의 선수들이 복식에도 출전하는 등 복식은 세계적인 선수들의 또 다른 플레이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창구로서 팬들의 관심 또한 매우 컸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앞서 언급한 스케줄의 문제, 체력 안배, 더 나아가 단식에서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게 된 기반을 바탕으로 톱 선수들은 더 이상 복식에 출전하지 않게 되었다. 그랜드슬램을 제외한 일반 투어 대회의 경우 매일 다음 라운드의 경기가 열리는데 복식까지 출전하면 하루에 두 경기, 만약 우천으로 전날 경기가 취소될 시에는 하루에 3~4경기를 치러야 하는 불상사 또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톱 선수들이 복식에 출전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몸이 곧 재산인 투어 선수들에게 이는 너무나 위험한 선택이며 프로 선수로서 자신의 몸을 가장 큰 자산으로 여기는 선수들은 복식을 포기하고 그 시간에 휴식과 재활에 자연스럽게 투자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 자리를 누가 채우게 된 것일까? 아니, 다시 말해 이러한 테니스 환경의 변화로 인해 어떠한 선수들이 너무나 당연히 복식 무대에 자주 얼굴을 비추게 된 것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어린 시절부터 라켓을 잡은 선수들은 단식 선수로서의 꿈을 꾸게 마련이다. 하지만 치열하고 험난한 프로 무대를 경험한 선수들은 지쳐가고 희망을 잃기도 한다. 선수가 되기 위해 그들의 가족은 많은 것을 희생하고 집안의 재산을 대부분 온전히 자신에게 쏟았는데 정작 이제 성적을 내고 그 돈을 갚아줘야 할 나이에 이르렀지만 여전히 투어에서 성적을 내지 못하고 부모님의 자금에 의존해야 하는 자신에 큰 실망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이른 10대 후반과 20대 초반의 선수들.
 
만약 조금 더 자신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대학 진로를 고민하게 된다. 물론 장학금을 받고 대학교에 입학한다면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지만 4년간 소속 대학교를 위해 뛰어야 하며 부수적인 행사나 과외 외엔 별다른 수입을 벌 수 없는 그들 입장에서는 투어 무대에서 날아다니는 동료를 보며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다.
 
그리하여 다시 돌아온 투어 무대는 생각보다 녹록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해온 것이 테니스인 만큼 더 열심히 퓨처스와 챌린저 무대를 두드려보지만 이 또한 쉽게 열리지 않는 문이다. 자신과 같은 선수들이 한두 명이 아니니 그 경쟁 또한 치열한 것이다.
 
매주 일찍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대회마다 이동하고 숙박을 해결해야 하는 등 비용에 대한 걱정이 앞설 때쯤 선수는 본격적인 고민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또 하나의 희망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바로 복식에서의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복식에서 세계 1위에 올랐거나 유명 복식 전문 선수들인 미국의 마이크 브라이언, 밥 브라이언 형제, 앤디 머레이(영국)의 형으로 현재 복식 최고의 선수로 칭송 받는 제이미 머레이(영국), 복식계의 레전드라 불리는 다니엘 네스터(캐나다), 마크 놀즈(바하마) 그리고 영원한 복식의 슈퍼스타 토드 우드브릿지(호주)와 토드 우드포드(호주) 등이 모두 이와 같은 사례에 해당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이치다.
 
이들 모두 퓨처스와 챌린저 무대부터 시작하여 치열한 단식 세계에서 어렵게 버텨 왔으며 어느 순간 자신의 재능과 신체에 더 부합되는 복식으로 전향하여 세계적인 선수가 된 것이다. 복식 전문 선수로서 자신이 좋아하는 테니스를 더 오래 즐기면서 할 수 있고 더 안정적인 수입 또한 얻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탁월한 선택은 없지 않을까. 복식 전문 선수는 이러한 현실적인 선택의 갈림길에서 탄생한 또 다른 산물인 것이다.
 
에르베르(위)는 단식 44위, 복식 4위에 오를 정도로 단복식에서 모두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복식 전문 선수로서의 현실
복식 전문 선수로서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보다 테니스 선수의 생명력 연장에 있다. 보통 단식은 매우 육체 노동적인 분야로서 체력이 받쳐주지 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더욱 버티기 어려운 법이다.
 
현재 37세인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와 같이 고령(?)에도 불구하고 신의 경지의 테니스를 하는 미스터리한 존재도 있지만 이는 타고난 실력뿐만 아니라 트레이너와 의사, 매니지먼트, 심리치료사 등 오롯이 테니스에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 환경 또한 무시할 수 없기에 이런 것이 가능할 수 있는 돈이 필요하다.
 
따라서 단식에서 보통 20대 초반 톱 선수가 되는 것은 매우 자주 볼 수 상황이나 이를 오랜 기간 동안 유지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최근 라켓 기술의 발달로 30대 선수들이 다수 상위 랭킹에 포진되어 있는 것이 이례적이긴 하나 단식의 수명이 짧은 것은 실제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반해 복식은 체력적인 부담이 덜 하기 때문에 늦은 나이까지 현역 생활을 유지할 수 있고 단순히 유지하는 것을 넘어 불혹의 나이에도 최고의 선수로 군림할 수 있다. 실제 4월 22일 기준 세계 복식 1위는 마이크 브라이언(미국)으로 올해 나이 40세다. 한때 그랜드슬램 무대와 올림픽 무대를 장악하며 아시아의 희망으로 불렸던 레안더 파에스(인도)는 올해 45세의 나이로 아직도 현역에서 뛰며 100위권을 유지하고 있으니 경이롭기까지 한 업적임이 분명하다.
 
복식을 통해 선수 생명을 연장한 파에스
 
이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나이가 들어서까지 현역으로 뛸 수 있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큰 축복이자 혜택일 것이다. 대부분의 운동이 30대에 접어들면 은퇴를 강요당하고 지도자로서 새 출발을 해야 한다면 테니스 복식 전문 선수는 그보다 10여 년 이상 현역에서 뛸 수 있는 셈이다.
 
두 번째로 복식의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한 것은 바로 안정적이면서도 불규칙한 수입이다. 단식 선수로 활동 시 대회 초반 자주 탈락하고 많은 승수를 챙길 수 없다면 수입은 그만큼 떨어지기 마련이다. 특히, 세계랭킹 낮으면 예선부터 뛰어야 하는데 예선에서조차 조기 탈락한다면 그 심각성은 더해진다. 여기에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이동하는 비용과 매일 숙식을 해결해야 하는 경비와 자신의 코치와 매니저에게 지불해야 하는 추가 비용까지 감안한다면 단식은 정말 기본적인 생계를 위협받을 수 있다.
 
하지만 복식은 2배의 인원이 추가되는 만큼 본선에 들어갈 확률은 그만큼 높아진다. 물론 수입은 단식보다 못하지만 파트너를 잘 만나 한 라운드라도 더 진출할 수 있다면 그만큼 안정적인 수입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다면 과연 몇 위 정도에는 들어야 복식 전문 선수로서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인데 이는 통계적으로 세계 50위~100위권 내에는 입성해야 수입다운 수입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 10년 정도의 경력에 100위 안팎의 선수인 경우 보통 총상금이 약 5억~6억원 정도가 되는데 1년에 5~6천만원을 상금으로 벌어들인다고 가정하면 그리 좋은 수입은 아닐 수 있다. 따라서 높은 랭킹을 얻어 더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것이 복식 전문 선수로서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필연적이다.
 
마지막으로 복식 전문 선수로서의 가장 큰 단점이자 어쩌면 장점일 수도 있는 점은 바로 운명과 같은 파트너를 찾는 일이다. 복식은 혼자 할 수 없는 만큼 파트너가 절대적인데 같은 파트너와 같은 대회에 출전하고 오랜 기간 함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운이 좋아야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복식에서 호흡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2017년까지 복식 전문 선수로 활동했고 한때 세계 복식 23위까지 올랐던 조나단 커(호주)에 의하면 그는 처음 투어 데뷔 5년 뒤 복식 전문 선수로 전향했는데 선수로 활동하는 동안 아마도 100명을 넘는 파트너와 함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중에는 세계적인 복식 선수였던 로버트 린드스테드(스웨덴), 제이미 머레이(영국), 폴 헨리(호주) 등도 있었으니 다양한 파트너와 새로운 경험을 쌓은 것은 흥미로울 수 있다.
 
하지만 생계적인 입장에서 매번 새로운 파트너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는 것은 고역이 아닐 수 없다. 또한 복식 전문 선수로서 복식의 꽃이라 할 수 있는 ATP투어 파이널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같은 선수와 꾸준히 한 해 동안 호흡을 맞춰야 하는데 파트너를 계속 바꾸게 되면 그 꿈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다. 좋은 파트너를 만나 빨리 만나 좋은 결과를 얻더라도 어느 순간부터 호흡이 안 맞기 시작한다면 이는 생계와 선수로서의 커리어에 직결되기 때문에 그 누군가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가 오기 마련이다.
 
아무리 친하고 서로를 위한다 해도 무리해서 맞지 않는 파트너십을 끌고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경우 상호 간 합의하에 잠시 떨어져서 다른 파트너와 짝을 이루고 재결합 여부를 가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한 명이 더 잘 맞는 파트너를 찾는 경우 아쉽지만 웃으며 보내주는 것이 관행이라고 한다.
 
일례로 네스터의 경우 4대 그랜드슬램 복식 및 올림픽 복식 금메달을 따내는 복식에서 골든슬램을 달성했고 세계 1위까지 올랐는데 그 역시 최고의 파트너이자 3개의 그랜드슬램을 합작한 마크 놀즈를 만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10여년 후 자신이 노쇠해지며 자신의 결함을 커버해줄 수 있는 파워 넘치고 베이스라인 플레이가 강력한 다른 파트너를 찾게 되었는데 그때 네나드 지모니치를 만나 제2의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다고 하니 파트너를 만나는 것도 복식 전문 선수로서의 커리어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임이 분명하다.
 
복식 전문 선수로서의 삶은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아무리 그랜드슬램을 많이 우승하고 아무리 세계 1위에 오르더라도 유명인사와는 거리가 멀다. 그 이유는 TV에서는 복식 경기를 거의 중계해주지 않기 때문에 일반 대중들은 선수의 얼굴까지 기억하지 못 하는 일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식 전문 선수로서 산다는 것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는 다른 삶이다. 대중이 알아보면 좋겠지만 그보다 하나의 직업으로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 하나로 꾸준히 인내심을 가지고 이어가는 우리의 일반적인 삶과도 비슷한 것이 바로 복식 전문 선수의 삶이다.
 
글= 전채항 객원기자,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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