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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데뷔 두 번째 대회 만에 우승, ‘19살 신인’ 이은혜, “제 이름처럼 은혜를 갚을래요”
박준용 기자 ( loveis5517@tennis.co.kr ) | 2019-04-19 오후 2:24:26
실업 무대에서 돌풍을 일으킨 신예 이은혜. 사진= 최대일(스튜디오 UP)
지난 3월 말 강원도 영월에서 열린 2019 제1차 한국실업테니스연맹전 여자단식에서 만 19살 이은혜(NH농협은행)가 국가대표 언니들을 연달아 꺾고 정상에 오르며 국내 테니스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쟁쟁한 선수들이 출전하는 실업 대회에서 10대가 우승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코트 안에서는 파이팅이 넘치지만 코트 밖에서는 수줍음이 많고 부끄럼도 잘 타는 등 ‘반전 매력’을 발산하는 이은혜를 만나보자.
 
우승 축하 인사를 건네자 이은혜는 “아직 얼떨떨해요”라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지난 2월 중앙여고를 졸업한 이은혜는 NH농협은행에 입단했다. 실업 무대 데뷔전인 여수오픈에서 16강 탈락했지만 제1차 한국실업테니스연맹전 8강에서 톱시드 이소라(고양시청)를 물리치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녀의 돌풍은 계속 이어졌다. 4강에서 소속팀 언니 정영원을 꺾더니 결승에서 국가대표이자 실업 최강자 정수남(강원도청)을 6-2 6-1로 완파하고 실업 데뷔 두 번째 대회 만에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은 영광을 누렸다.
 
이은혜는 “(정)수남 언니가 4강에서 소속팀 (김)세현 언니와 4시간이 넘는 접전을 펼쳐서 그런지 많이 지쳐 보여 체력과 패기로 밀어붙인 것이 적중했다”라면서 “고3 때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실업 무대에 오자마자 우승의 감정을 느껴 기분이 좋았다. 나도 이렇게 빨리 우승할 줄 몰랐다”고 밝혔다. 이어서 “한 경기 한 경기 이길 때마다 ‘만족하지 않고 조금 더 해 보자’라는 생각이 우승으로 이어져 더 짜릿했고 성취감도 느꼈다”고 덧붙였다.
 
주니어 때부터 자신을 지원해 준 소속팀 NH농협은행에도 고마움을 나타냈다. 지난 2017년 NH농협은행은 스포츠단을 출범하면서 시작한 비인기 스포츠 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이은혜를 지원했다. 이은혜는 “NH농협은행 지원을 받으면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번 우승으로 조금이나마 보답을 한 것 같다. 박용국 단장님(NH농협은행 스포츠단)과 김동현 감독님 그리고 막내인 저에게 항상 응원을 보내준 팀 언니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이은혜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레슨을 받는 것을 보고 테니스를 하고 싶었지만 어린 나이 때문에 부모는 반대했다. 마침 이은혜가 다니던 초등학교 테니스부 감독이 이은혜의 운동 감각을 알아보고 부모를 설득해 라켓을 잡기 시작했다. 4학년 때 10세부에서 우승 한 번 밖에 못 할 정도로 이은혜는 큰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러다 중학교 진학 후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고 2015년 국내 최고 권위의 주니어 대회 장호배에서 대회 역사상 최초 중학생 신분으로 정상에 올랐다.
 
 
국내 무대를 평정한 이은혜는 눈을 돌려 세계 무대에 진출했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2016년 국내에서 열린 론진 랑데부 롤랑가로스에서 우승하며 비록 예예선이었지만 프랑스오픈을 통해 처음으로 그랜드슬램 주니어 무대를 밟았다. 하지만 본선 진출 최종 관문인 와일드카드 결정전 문턱을 넘지 못했고 이듬해 호주오픈 주니어에서는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올라 1회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주니어 최고 세계랭킹은 113위.
 
이은혜는 “외국 선수들은 공격적인 플레이를 하면서 수비도 좋다. 또 전술과 전략도 다양하다. 반면, 나는 그렇지 못했다. 전략과 전술이 한정적이라 한계를 느꼈다. ‘어렸을 때부터 전술적인 플레이를 배웠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플레이가 형성된 후에 새로운 전술을 끼워 넣기가 힘들었다”라고 전했다. 이은혜는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코트에서 더 많은 땀방울을 흘렸다.
 
카누 선수 출신 부모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171cm의 키와 단단한 하드웨어서 뿜어져 나오는 이은혜의 강력한 스트로크와 서브는 외국 선수에 비해서도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파워 부족이 약점으로 꼽히는 한국 여자테니스에 이은혜는 그야말로 단비 같은 존재다. 여기에 백핸드 앵글샷은 감탄이 나올 정도로 일품이다. 단, 네트 플레이가 약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이은혜는 “파워를 앞세운 베이스라인 플레이가 가장 자신 있다. 외국 선수들도 내 스트로크를 받기 힘들어한다. 네트 플레이가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현역 시절 네트 플레이가 뛰어났던 김동현 감독님으로부터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우승이 테니스를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됐지만 가끔은 ‘왜 테니스를 했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후배 선수와 비교할 때는 심적으로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은혜는 “간혹 ‘후배 선수들이 나보다 더 낫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부족한 점을 보완하면서 견뎠다. 지금은 비교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가야 할 길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라고 웃었다.
 
자신을 표현해 해달라는 질문에 “코트 안에서는 파이팅이 넘치고 심판한테도 할 말은 다 하지만 코트 밖에서는 내성적”이라고 답한 이은혜는 노래방에서 소리를 지르며 노래를 부르거나 영화를 보면서 재충전을 한다고 한다. 애창곡은 다비치의 ‘8282’이며 좋아하는 연예인은 배우 류준열이라고.
 
노래를 부탁하자 손사래를 친 이은혜는 롤 모델로 오사카 나오미(일본)를 꼽았다. 오사카는 지난해 US오픈에서 일본 선수 최초로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했고 올해 호주오픈 챔피언이다. 또 아시아 선수 최초로 세계 1위에 올랐다.
 
이은혜는 “오사카는 기술은 물론 정신력이 강하다. 또 감정을 잘 컨트롤 한다. 나는 승부욕이 강해서 감정을 잘 표출한다. 내 플레이 스타일이 오사카와 비슷해서 그런지 경기를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다. 언젠가 오사카와 경기를 꼭 하고 싶다. 그러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열심히 해야겠다. 또 정현 오빠처럼 잘해서 유명해지면 류준열 오빠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웃었다.
 
마지막으로 이은혜는 지금까지 테니스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저를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신 부모님과 저를 믿고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신 팀을 위해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NH농협은행의 지원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제자리 걸음이었을 것이다. 제 이름처럼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더 열심히 하겠다.”
 
WTA 세계랭킹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것을 올해 목표로 삼은 이은혜는 올 시즌부터 주니어 때 높은 벽을 실감했던 세계무대에도 적극적으로 도전할 예정이다. 주니어에서의 성적이 프로에서의 성적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은혜의 성장 가능성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은혜가 더욱더 기대되는 이유다.
 
글= 박준용 기자(loveis5517@tennis.co.kr), 사진= 최대일(스튜디오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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