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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코의 맛있는 인터뷰]생활체육 테니스의 대통령, 성기춘 KATA 회장의 꿈은 계속된다
이은미 기자 ( xxsc7@tennis.co.kr ) | 2018-02-17 오후 1:59:09
성기춘 (사)한국테니스진흥협회(KATA) 회장. 사진= 최대일(스튜디오 UP)
[테니스코리아= 이은미 기자]'생활체육 테니스사(史)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성기춘 (사)한국테니스진흥협회(KATA) 회장은 칠순을 앞둔 사람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았다. 동안 외모에 목소리는 힘이 넘쳤다. 그저 운동을 좋아하는 테니스 동호인이었던 그가 대한민국 테니스 동호인을 아우르는 카타 회장이 되기까지, 또 23년 동안 그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오는 지 반평생을 생활체육 테니스에 바친 성 회장을 만났다.
 
[강나루] 경기 남양주시 수석동 162-4
 
자타공인 김치 마니아, "김치는 시어야 제맛"
성 회장이 추천한 맛집은 다름 아닌 남양주 수석동 한강변에 자리 잡은 전통 한식당이었다. 식당의 외관은 화려하지 않지만 무언가 깊은 맛의 내공이 담겨 있을 듯한 기운이 전해졌다. 실내에서 느끼는 푸근함은 마치 시골집에 찾아온 기분을 느끼게 해줬다.
 
성 회장이 고른 메뉴는 김치찌개. 김이 모락모락, 맛있는 냄새가 솔솔. 숟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크게 한 입 베어 문 순간, 김치찌개의 얼큰한 맛이 다른 생각할 틈 없이 다음 숟가락을 들게 했다. 김치찌개의 맛도 일품이었지만 반찬도 화려했다. 수육, 생선구이는 기본, 제철 음식인 굴 무침 그리고 각종 나물까지 밥 한 공기로는 부족한 푸짐한 한 상 차림이었다.
 
성 회장은 "김치찌개를 정말 좋아한다. 나는 무조건 한식파다. 특히 김치를 사랑한다. 밥을 먹을 때 무조건 신김치가 있어야 한다. 아무리 잘 차려놓은 밥상이라도 신김치가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성 회장의 김치 사랑은 동호인계에 잘 알려진 사실. "일주일에 세 번 김치찌개를 먹는데 그중 두 번은 여기서 먹는다. 화, 목요일에 운동이 끝나면 클럽 회원들과 같이 온다. 나머지 한 번은 집에서 아내가 해주는 김치찌개를 먹는다."
 
그렇다면 김치를 좋아하는 만큼 김치 요리를 잘하는 '요섹남'의 매력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김치찌개를 손수 만들어 드시기도 하나요"라는 기자의 질문에 성 회장은 "요리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
 
가수 정광태가 부른 김치 주제가가 떠오른다. 노랫말이 성 회장의 김치 사랑을 대신해주는 것 같다.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 진수성찬 산해진미 날 유혹해도 김치 없으면 왠지 허전해 / 김치 없인 못 살아 정말 못살아 나는 나는 너를 못 잊어 / 맛으로 보나 향기로 보나 빠질 수 없지 입맛을 바꿀 수 있나."
 
성기춘 회장의 '최애(최고로 애정)' 음식은 김치찌개였다
 
오직 한 길, 정직한 발품으로 금자탑을 쌓다
굴곡진 삶 속에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성 회장은 목표를 잃지 않은 채 1995년부터 23년 동안 오직 한길만 걸어왔다. 그 결과 생활체육 테니스계의 대통령으로 거듭났다. '성기춘' 이름 석자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명성은 확고했다. 그도 그럴 것이 성 회장은 생활체육 테니스의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무려 23년간 동호인 테니스의 발전을 선도했다.
 
성 회장은 아마추어 테니스 랭킹제를 확대 발전시킨 사람이다. 1995년 대한테니스협회에 동호인위원회가 만들어지고 테니스코리아가 각 대회별로 자료를 수집하여 동호인대회 랭킹을 발표, 관리했다.
 
5년 뒤인 2000년 말에는 신충식 명예회장과 성 회장의 주도로 한국동호인테니스연맹(현 카타)을 발족했고 테니스코리아가 관리하던 랭킹을 연맹에서 맡기로 했다. 2001년 9월부터 한국동호인테니스협회로 새롭게 거듭난 카타는 신충식 회장에 이어 3대 회장으로 성기춘 회장이 추대됐고 2007년 6월에 사단법인 한국테니스진흥협회로 공식 명칭을 개명한 후 지금에 이르렀다.
 
성기춘 회장은 카타의 창단 멤버로 카타 살림을 책임지는 데 앞장 서왔다. 먼저 알 굵은 스폰서십을 확보해 국내 최대 규모의 아마추어테니스대회를 개최했다. 헤드, 하나은행, 암웨이, 굽네치킨 등 국내 굴지의 기업을 스폰서로 유치하고, 또 비트로, 스타스포츠를 동호인들로부터 사랑 받는 토종 브랜드로 자라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우리 삶은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다. 성 회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카타를 23년 운영하면서 3~4년 전이 가장 힘들었다. 당시 자금난도 있었고 대회도 많이 줄었다. 그러나 희망을 잃지 않았다.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땀과 노력이 필요했다고.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 스폰서를 찾기 위해 열심히 발품을 팔았다. 당시에는 거절을 당했지만 지금은 먼저 손을 내미는 기업도 있다. 이게 다 그때의 노력이 아니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다"고 했다.
 
협상의 비결에 대해서는 "테니스가 귀족 스포츠인 만큼 기업 수뇌부에서는 거의 테니스를 즐겨한다. 또 기업 입장에서 생활체육대회에 후원하는 마케팅 비용은 그리 큰 부담은 아니기 때문에 모두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했다"면서 "기업의 도움이 없었다면 규모가 큰 대회를 치를 수 없었을 것이다"고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또 다른 비결로 배려와 베풂을 꼽았다. "세상을 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소한 것이라도 배려할 줄 알고, 베풀 줄 알아야 한다. 스폰서와의 관계도 똑같다. 나는 내가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한다"고 소신을 전했다.
 
테니스에 살고 테니스에 죽는 '테생(生)테사(死)'
23년간 카타를 운영하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는 성기춘 회장
 
성 회장과 테니스는 그야말로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었다. 그는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2001년 한해에만 전국 테니스대회에서 13번 우승했고,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장년부 1위 자리를 지켰다. 현재까지 총 130회 우승을 기록했다.
 
"학교 다닐 때 탁구를 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운동 신경이 있어 테니스를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일단 사람의 움직임을 잘 볼 수 있고 스트로크를 빨리 칠 수 있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굉장한 도움이 됐다. 연습도 정말 많이 했다. 한 해 한 해 나이는 들어가고 일은 해야 하고 이런 상황에 운동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오히려 더 부지런히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새벽부터 일어나 코트를 10~15바퀴 정도 뛰고 테니스를 쳤다. 체력이 좋아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얻었다"며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말했다.
 
이렇게 많은 우승을 거두기까지 성 회장의 활약은 물론 파트너와의 완벽한 호흡이 뒷받침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파트너를 선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답은 간단했다. "일단 테니스를 잘 쳐야 한다. 그리고 나하고 맞는 사람이어야 한다. 대회를 많이 출전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 사람 저 사람 알게 되면서 좋은 파트너를 구했다"고 말했다.
 
생활체육 테니스계의 1인자로 자리매김한 성 회장은 빅 픽쳐를 그리기 시작했다. "내가 못했던 것을 자식이 하면 더 좋고 또 내가 못했던 꿈을 이제는 펼쳐보고 싶다. 그래서 더 테니스에 몰두하기 시작했고 '언젠가는 나도 대회를 크게 열어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때부터 여러 사람을 만났고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큰 대회를 열겠다는 성 회장의 꿈은 머지않아 이루어졌고 이제는 생활체육 테니스계 '미다스의 손'으로 통하고 있다.
 
생활체육 테니스 하나로 통합돼야
"우리의 목표는 테니스 동호인들이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활체육 테니스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성 회장의 가장 큰 숙원은 3개의 생활체육 테니스 단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현재 카타를 비롯해 (사)한국테니스발전협의회(KATO), 국민생활체육전국테니스연합회(현재 대한테니스협회로 통합) 총 3개로 나누어져 있다.
 
성 회장은 "좋은 테니스, 재미있는 테니스, 대접받는 테니스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결국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하나가 된다면 기업으로부터 더 큰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또 그만큼 동호인들에게 더 많이 베풀 수 있다. 결국 이것이 상생이다"면서 "랭킹을 하나로 통합하되 운영은 따로 하는 등 방법은 여러 가지다. 앞으로 동호인 테니스는 없어질 수 없다. 관계를 잘 발전시켜 동호인들이 대회에 나와서 즐겁게 테니스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전했다.
 
성 회장과 대화를 하는 내내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테니스 그리고 동호인 생각뿐이었다. 성 회장 인생의 엔딩 크레딧에는 아마 전국 테니스인들의 이름이 모두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사 전문은 테니스코리아 2월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글= 이은미 기자(xxsc7@tennis.co.kr), 사진= 최대일(스튜디오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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