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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태, '정말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박준용 기자 ( loveis5517@tennis.co.kr ) | 2013-11-02 오후 2:21:17
삼성증권배 챌린저를 마지막으로 코트를 떠나는 임규태
한국 남자 테니스 국가대표로 큰 활약을 한 임규태(삼성증권)가 코트를 떠난다.
 
임규태는 10여년 동안 한국 대표팀으로 활약했는데 특히 2007년 한국 남자 테니스가 데이비스컵 월드그룹에 진출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퓨처스에서 통산 10차례 우승을 했고 2009년에는 자신의 최고 기록인 160위까지 기록하는 등 상승세를 탔지만 두 차례의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 코트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은퇴를 선언했다.
 
10월 30일에는 선배 이형택(이형택아카데미 이사장)과 함께 호흡을 맞춰 삼성증권배챌린저 복식에 나서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이제 정든 코트를 떠나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임규태를 삼성증권배챌린저가 열리는 서울 올림픽공원에 만나 그의 테니스 인생을 들어봤다.
 
인터뷰에 나서는 임규태의 모습은 담담한 모습이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얼굴 표정은 왠지 아쉬움이 남는 듯한 표정이었다.
 
먼저, 은퇴하는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을 하자 “아쉬움도 있고 미련도 많이 남는다. 하지만 선수생활을 정직하게 했다고 말하고 싶다. 한 번도 요령을 피운 적이 없고 오직 앞만 바라보고 테니스만 했다”고 덤덤하게 소감을 밝혔다.
 
임규태는 서울 금성초등학교 때 단지 다이어트를 위해 테니스반에 들어갔다. 그러던 중 교장선생님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에 나섰다.
 
그리고 성균관대학교에 재학중이던 2002년 한국 최고 귄위의 전한국테니스선수권에서 우승을 했고 이어서 국내에서 열리는 1개의 챌린저와 3개의 퓨처스를 뛰며 단숨에 세계랭킹 400위권에 진입했다.
 
2년 뒤 그의 기량을 유심히 지켜보던 당시 주원홍 감독(현 대한테니스협회장)의 눈에 띄어 삼성증권에 입단했다.
 
삼성증권에 입단한 후 그의 기량은 일취월장했다. 퓨처스에서도 여러 차례 우승하고 챌린저도 뛰는 등 투어대회 선수가 되기 위한 단계를 차근차근 밟았다.
 
그 과정에서 임규태의 옆에는 이형택이라는 모범답안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형택의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을 배우려고 했다.
 
임규태는 “내 재능이 뛰어나지 않아 (이)형택이 형을 무조건 따라 했다. 그래서 형이 하는 행동, 운동, 스케줄, 스텝 등 모든 것을 따라 하려고 했다. 같이 연습하면서도 형의 모든 것을 배우려고 했다. 형도 많은 도움을 줬다”며 “당시 (김)선용이와 (전)웅선이가 주니어 무대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을 때였다. 이들은 선후배지만 경쟁자이기 때문에 살아남으려면 형택이 형을 따라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규태는 팀에서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 팀에는 이형택이라는 걸출한 스타와 세계 주니어 1위와 4위의 김선용과 전웅선이 있어 팀에서는 주로 이들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임규태는 외국대회 다닐 때 코치가 없어 경기를 할 때나 밥 먹을 때 늘 혼자였다. 이 때문에 임규태는 외로움을 많이 느껴 눈물을 흘린 적도 있었다. 팀에서도 코치를 구하려고 수소문했지만 마땅한 코치가 없었다.
 
임규태는 “편안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없다는 것에 굉장히 외로웠다. 세계 160위에 오르고 나서는 경기에 졌을 때 내가 왜 졌는지 몰라 코치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코치가 있으면 100위 내에 진입할 수 있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팀에서도 열심히 알아봐줬지만 적합한 코치를 찾지 못해 결국 지금까지 혼자 다녔다”고 말했다.
 
임규태가 힘들어 할 때 그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 이가 바로 지금의 아내다.
 
당시 약혼녀였던 아내는 다니던 회사에 휴가까지 내면서 임규태와 외국대회에 동행하며 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고 임규태는 그런 그녀에게 많은 힘을 얻었다. 임규태는 만약 아내가 없었다면 그 때 포기했었을지도 모르겠다며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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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임규태가 자신의 마지막 경기를 끝내고 가족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그러던 중 2010년 시련이 닥쳤다.
 
그 해 4월 에콰도르챌린저에서 비가 오는 바람에 하루 세 경기를 하는 강행군을 하다 오른쪽 팔꿈치에 무리가 왔다. 정밀검사 결과 오른쪽 팔꿈치에 뼈 조각이 하나 돌아다니고 있었고 팔꿈치 뼈가 웃자란 것이었다.
 
8월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은 임규태는 2011년 파키스탄과의 데이비스컵 도중 다시 한 번 부상을 당한다. 이번에는 부상 정도가 꽤 심각했다.
 
당시 한국은 아시아/오세아니아 2그룹으로 추락한 상태였다. 1그룹에 복귀하기 위해서는 파키스탄을 꼭 이겨야만 했었다.
 
임규태는 첫 단식에 나서 아킬 칸을 6-2 6-4 6-2로 물리치며 기선을 제압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서브를 넣다가 오른쪽 팔꿈치 안쪽의 인대가 끊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부상을 알아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태연하게 인상 한 번 찡그리지 않고 경기를 마무리했다.
 
그 경기가 끝난 후 기자는 임규태와 인터뷰를 했는데도 부상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정도로 그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임규태는 “서브를 넣는 순간 오른쪽 귀에서 ‘뚝’ 소리가 크게 났다.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다. 그런데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개인전이라면 그냥 기권했었을 텐데 데이비스컵 첫 단식이고 한국에게 매우 중요한 경기였다. 그래서 통증은 심해지는데도 기권을 할 수가 없었다”며 “참으면서 했는데 경기가 끝나자마자 숟가락을 들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다음날 (임)용규와 복식에 나가기로 했었는데 결국 포기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 경기가 끝난 후 임규태는 서울의 유명 병원 3곳에서 진단을 받았는데 두 곳에서 수술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 LA의 팔꿈치 전문 병원인 조브 클리닉에 검진결과를 보냈는데 며칠 후 청천벽력과 같은 답변이 왔다.
 
수술을 하지 않으면 평생 라켓을 들 수 없어 코치생활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임규태는 미국으로 건너가 수술을 받았다.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 임규태는 다시 1년간 지독한 재활훈련을 했고 지난해 12월 제1차 홍콩퓨처스에서 복귀전을 치러 8강까지 올랐다. 복귀전치고는 괜찮은 성적이었다.
 
하지만 임규태는 한계를 느꼈을까? 임규태는 이때 은퇴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정신적으로 힘들 것 같았다. 정말 다시 해 보려고 1년동안 오직 재활에만 매달렸었다. 하지만 서브가 전성기의 70~80%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 정도 실력으로 다시 ‘챌린저에 뛸 수 있을까?’ ‘그랜드슬램에서 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김일순 감독님과 상의해 은퇴하기로 결정했다”며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부상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세계 100위 근처에는 올라갔을 것이라면서 “당시 소에다 고(일본)가 내 랭킹과 비슷했다. 그는 100위 안에 진입했는데 나도 아마 80~90위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부상도 실력이다”며 웃으며 말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분명 아쉬움이 가득했을 것이다.
 
24년 동안 테니스를 하면서 최고의 경기는 어떤 경기였을까? 임규태는 2007년 한국이 데이비스컵 월드그룹에 진출했을 때를 꼽았다.
 
당시 한국은 슬로바키아와 월드그룹 승격을 위한 마지막 승부를 펼쳤다.
 
첫 단식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두 번째 단식에서 패하면서 종합전적이 1-1이었다. 월드그룹 진출을 위해서는 복식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임규태는 이형택과 호흡을 맞춰 6-0 6-3 6-2로 이기고 한국이 월드그룹에 진출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임규태는 “당시 출전하리라 생각도 못하고 있다가 두 번째 단식이 끝나고 출전 지시를 받았다. 정말 긴장이 돼 잠도 안 왔다. 그래서 새벽 3시까지 방에서 고무줄을 당기며 긴장을 풀었는데 형택이 형과 호흡이 잘 맞아 이길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고 당시 전영대 감독님이 안아주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이 경기가 내 생애 최고의 경기다”고 회상했다.
 
이번 삼성증권배챌린저에서 이형택과 함께 복식 경기를 하면서도 마치 2007년으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경기에 집중해야 하는데 예전에 경기했던 것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앞으로 이런 경기를 하지 못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한 포인트라도 더 따야지’ ‘한 번이라도 더 리턴을 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는 테니스를 더 배워 훌륭한 후배들을 양성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한다고 했다.
 
그는 현재 지난해 12월 홍콩퓨처스에서 만난 주니어 선수 스팩만 클레어 윤기 최(SPACKMAN, Claire Yoonkee Choi 이하 최윤기) 코치를 맡고 있다. 올해 3월에는 최윤기가 브루나이주니어(4그룹) 단식에서 정상에 올라 아직은 초보 지도자이지만 뿌듯함을 느꼈다.
 
임규태는 후배들에게도 조언을 잊지 않았는데 “국내선수들이 현재에 안주하지 말고 해외에 나가야 한다. 국내에만 있으면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된다”며 “지금 잘하고 있는 선수들이 몇 명 있는데 도전을 해야 한다. 편안하게 생각하면 발전이 없고 의미가 없다. 지금 어린 주니어들도 열심히 잘하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더 강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치면서 “훌륭한 팀에서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주원홍 회장님과 김일순 감독님, 윤용일 코치님 등 삼성증권 관계자 분들과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나를 테니스에 입문시켜주신 김영교 교장선생님 그리고 10년여동안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신 대표팀 감독님들에게도 감사드린다. 훌륭한 선수들과 훌륭한 분들과 함께 해 정말 행복했다”며 목이 멘 목소리로 말했다.
 
임규태와 이야기를 하면서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자신의 꿈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도전한 임규태에게 짧지만 ‘정말 수고했습니다’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
 
임규태의 은퇴식은 11월 3일 서울 올림픽공원 테니스장 센터코트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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