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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와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들의 투어 생활
백승원 객원 기자 ( loveis5517@tennis.co.kr ) | 2018-11-21 오전 10:40:23
지난 2010년 US오픈 여자단식 챔피언 클리스터스가 우승 트로피와 함께 딸을 안고 있다. 사진= GettyImagesKorea
2009년 US오픈 여자단식 시상식에서 킴 클리스터스(벨기에)가 딸 야다 엘르와 함께하는 아름답고도 뭉클한 광경이 펼쳐졌다.
 
‘엄마’ 클리스터스는 딸을 안으며 함께 우승 트로피를 들었지만 엘르는 엄마만 쳐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엄마 클리스터스로서는 테니스 인생 중 최고의 순간이었을 것이다.
 
2010년 엘레나 데멘티에바(러시아)는 “가족을 갖고 싶다”면서 29세라는 다소 이른 나이에 은퇴했고 아시아 선수 최초로 그랜드슬램 우승을 차지한 리나(중국) 역시 32세의 나이에 은퇴 후 임신과 출산 소식을 연이어 알렸다.
 
당시만 해도 엄마 선수들이 이렇게 투어에 복귀하여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최근 여자 선수들이 결혼과 출산을 위한 ‘선수 생활 은퇴’보다는 ‘출산 후 복귀’의 사례가 늘고 있다. 출산 후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워킹맘들과 그들의 삶을 소개한다.
 
‘아들 포기 못 해’ 양육권 승소 후 복귀한 빅토리아 아자렌카(벨라루스)
전 세계 1위 아자렌카는 지난 2016년 12월, 27세의 나이에 엄마가 됐다. 그녀는 출산 직후 자신의 SNS를 통해 아들을 안고 있는 사진을 게시하며 ‘오늘 저는 가장 어려운 싸움 끝에 제 생애 최고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우리의 아들이 마침내 건강하고 행복하게 태어났어요! 정말 고맙고, 복된 일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메시지로 출산 인사를 전했다.
 
아들 레오를 안고 있는 아자렌카
 
아자렌카는 출산 후 1년 만에 투어에 복귀했지만 아이의 친부와 양육권 소송에 휘말리면서 한동안 투어생활을 할 수 없었다.
 
양육권 소송으로 그녀는 지난해 US오픈과 올 시즌 호주오픈에 불참한 그녀는 양육권 소송에서 승리하고 투어에 컴백했다. 복귀 후 아직 예전만큼의 기량을 보이고 있지는 않지만 아들의 SNS 계정을 따로 개설할 정도로 테니스보다 육아에 더 신경 쓰는 모습이다.
 
아자렌카는 자신의 테니스화에 아들 이름을 새겨 넣으며 아들에 대한 사랑을 나타냈다  
 
생명과 ‘사투’를 벌인 끝에 딸 얻은 여제 세레나
전 세계 1위 세레나 역시 출산 후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선수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지난해 임신한 상태로 호주오픈에서 우승, WTA에 더 이상의 적수가 없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해 9월 1일, 딸 알렉시스 올림피아 오하니언(Alexis Olympia Ohanian)을 출산했다.
 
세레나의 출산 과정은 쉽지 않았다. 그녀는 외신과 가진 인터뷰에서 “출산 이후 합병증으로 생명과 사투를 벌였다"면서 “원인은 폐색전증이다. 호흡이 가빠졌을 때 망설이지 않고 간호사를 호출했다. 과거 폐색전증 병력이 있어 언제 또 이런 상황이 닥칠까 항상 두려움 속에 살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폐색전증 증상 중 하나인 기침 때문에 제왕절개 수술로 생긴 상처가 터져 다시 수술대에 올랐다. 의사들은 배에서 응고된 피가 부풀어 오르는 큰 혈전이 있다고 했다. 결국, 혈전이 폐로 이동하는 것을 막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라며 당시 아찔했던 순간을 설명했다.
 
엄마 세레나와 딸 오하니언
 
위기의 순간을 이겨낸 세레나는 지난 3월 BNP파리바오픈을 통해 복귀했다. 복귀 초반 세레나의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으나 윔블던과 US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서서히 예전의 기량을 되찾아 가고 있다.
 
윔블던 준우승 당시 워킹맘에 대한 메시지를 전해달라는 질문에 세레나는 “난 죽음에 가까웠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다른 모든 엄마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내가 무엇인가 하고 싶다고 마음을 먹으면 반드시 이뤄내는데 복귀도 같은 맥락이다. 업무로의 복귀가 두려운 워킹맘들에게 마음을 단단히 먹으면 두려울 것이 없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며 워킹맘들을 응원했다.
 
임신 때문에 ‘양손 백핸드를 한손 백핸드’로 바꾼 타티아나 마리아(독일)
지난 2013년 4월 자신의 코치 사를 에드와드와 결혼한 마리아는 그해 12월 26세의 나이에 딸 샬럿을 얻었다. 이듬해 4월 투어에 복귀한 그녀는 온 가족이 함께 투어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딸 샬럿이 투어에서 아빠, 엄마와 함께하지 못했던 기간은 마리아가 투어 복귀 직후였던 3개 대회에 불과하다.
 
마리아는 “온 가족이 함께 투어생활을 하는 것이 현재 나에겐 가장 중요하다”면서 “출산 후 투어에 복귀하면서 남편에게 ‘우리 가족 모두가 함께할 수 없다면 나 혼자만 대회에 출전하는 것 역시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 만큼 나에게 가족과 테니스 모두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마리아는 남편, 딸과 함께 투어를 동행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마리아가 출산 후 더 좋은 성적을 올렸다는 것이다. 결혼 전인 2007년 처음으로 톱100을 돌파했지만 오래 유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시즌 그녀는 총 33개 대회에 출전하며 톱100 중 가장 많은 대회를 소화했다. 결국, 그녀는 지난 시즌을 자신의 최고 세계랭킹 46위로 마무리했다. 지난 6월 스페인에서 열린 마요르카오픈에서는 아나스타샤 세바스토바(라트비아)를 6-4 7-5로 꺾고 자신의 첫 투어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다.
 
지난해 코리아오픈 출전 당시 마리아는 “임신 당시 투어생활을 충분히 소화할 만큼 어렸기에 당시에도 은퇴를 생각해본 적은 없다”면서 “사실 어렸을 때부터 양손 백핸드를 구사했지만 임신을 하면서 투어 복귀를 위해 남편과 상의 끝에 한손 백핸드로 바꿨다”며 테니스에 대한 열정을 드러낸 바 있다.
 
‘출산 후 복식 우승 감격’ 안드레아 미투(루마니아)
세계 68위까지 올랐던 미투는 지난해 26세의 나이에 임신과 함께 한동안 코트를 떠났다. 당시 그녀는 “출산 복귀 후 다시 톱100에 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복귀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2017년 12월 미투는 만삭의 사진을 자신의 SNS에 올리며 팬들에게 소식을 전했고 한 달 뒤 아들 아담의 사진과 함께 출산 소식을 SNS에 공개했다.
 
지난 4월 투어에 복귀한 미투는 7월 자국에서 열린 부쿠레슈티오픈에서 자국 동료인 이리나 카멜리아 베구(루마니아)와 호흡을 맞춰 복식 우승을 차지했고 아들과 함께 시상대에 올랐다. 미투는 “출산 후 라켓을 다시 잡은 지 3개월 만에 그것도 고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우승해 너무 기쁘다. 믿지 못할 우승이다”라고 감격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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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부쿠레슈티오픈 복식 우승을 차지한 후 시상식에서 아들과 함께한 미투
 
늘어나는 워킹맘 선수들, 제도는 ‘글쎄’
위에서 언급한 선수들 외에도 베라 즈보나레바(러시아), 카테리나 본다렌코(우크라이나)도 출산 후 투어에 복귀했고 맨디 미넬라(룩셈부르크) 역시 출산 후 투어에 복귀했다.
 
최근 워킹맘들이 증가하고 있는 배경에는 ‘의학의 발전’뿐만 아니라 출산과 육아는 여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남녀평등’이라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한몫하는 듯하다.
 
크리스티나 믈라데노비치(프랑스)는 “세레나와 마리아 같은 워킹맘들을 매우 존경한다. ‘내가 만약 저들과 같은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내 삶은 지금이랑 어떻게 변했을까?’라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라면서 “우리 모두는 테니스 선수이기에 앞서 ‘여성’이다. 그들과 같은 워킹맘들은 세상 여성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된다”라고 응원했다.
 
하지만 출산 후 복귀하는 선수들에 대한 제도적인 장치는 아직 미흡하다. WTA의 임신으로 인한 ‘스페셜 랭킹(SR)’에 대한 규정은 부상에 따른 복귀 규정과 같다.
 
WTA 스페셜 랭킹이 적용되는 범위는 6개월~2년 동안 대회에 출전하지 못한 선수가 경기 출전 불가 당시 단식 300위 이내, 복식 200위 이내 일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다.
 
또 스페셜 랭킹을 사용하려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게 된 직전 6개월의 랭킹 포인트, 해당 경기 엔트리 마감 최소 30일 전 스페셜 랭킹을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대회에 전달해야 한다. 지난 프랑스오픈을 앞두고 세레나의 와일드카드 제공을 두고 논란이 많았던 것 역시 미흡한 제도에서 비롯됐다.
 
워킹맘들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WTA는 출산에 대한 스페셜 랭킹을 단순히 일반 부상에 의한 복귀와 동일시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투어에 복귀하고 싶어 하는 워킹맘들에 대한 추가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출산을 일반 부상과 다르게 생각할 수 없다면 적어도 워킹맘들이 안정적인 투어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그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고민할 때이다.
 
글= 백승원 객원기자,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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