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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의 변화와 혁신의 아이콘, US오픈
전채항 객원 기자 ( hongju@mediawill.com ) | 2018-09-04 오전 11:14:59
US오픈이 열리는 미국 뉴욕의 빌리진킹 국립테니스센터
[테니스코리아 전채항 객원기자] US오픈은 4개 그랜드슬램 중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인 분위기로 유명하다. 마치 야구장에 온 것처럼 맥주를 마시며 경기를 즐기고 좋아하는 선수를 향해 목소리 높여 응원하며 경기 도중 폭죽을 터트리는 등 마치 축제의 현장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야말로 뉴욕에서만큼은 테니스는 관중을 위해 존재하는 무대라는 인식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US오픈은 늘 관중과 시청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새로운 것을 위한 변화에 투자해왔는데 변화에 인색한 세계 테니스 무대에서 매우 파격적인 행보를 이어왔다. 이런 행보가 자유로운’ US오픈이기에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리 놀랍지만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US오픈이 다른 그랜드슬램보다 한 발짝 더 앞서 나가 테니스계의 트렌드 리더로서 일으킨 사건에 대해 알아보자.
 
그랜드슬램 최초 남녀 상금 평등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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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금 평등화 등 여성 선수들의 권익을 위해 힘쓴 빌리 진 킹
통상적으로 남녀가 함께하는 스포츠의 경우 남자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금이 여자 선수보다 높은 편인데 이는 시장의 논리상 남자 경기에 대한 시청률과 관심이 더 많기 때문이다. TV 중계료와 광고 등 그에 따른 부수적인 수입을 더 높이기 위한 대회측의 욕구가 맞물려 남자 선수의 연봉이 상대적으로 더 높아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민의 목소리와 권리 추구에 대한 움직임이 강해지면서 사회가 성숙해지자 남녀 통합대회의 경우 남자 선수와 여자 선수의 기여도를 동일하게 여기며 상금 규모 역시 동일하게 맞추는 사례가 늘어났다. 물론 골프, 축구, 농구와 같은 대형 스포츠의 경우 스타 개개인의 영향도가 곧 리그의 흥행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남녀간의 상금 차이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지만 수영, 육상, 배구, 배드민턴, 알파인 스키 등은 세월을 지나며 상금 차이를 철폐하였다.
 
테니스는 종목의 특성만을 볼 때 골프와 같은 전자에 유사하지만 특이한 점은 여자 테니스 역시 남자 테니스 못지않게 슈퍼스타가 많이 존재하며 종목 자체의 인기에 크게 기여해왔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남녀 선수들 간의 상금 차이가 확연했던 테니스계에도 서서히 상금 동일화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었고 빌리 진 킹(미국)과 윌리엄스 자매(미국) 등 전현직 선수들이 앞장서서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하였다. 
 
미국 테니스계의 스타였던 빌리 진 킹이 1972 US오픈 우승 후 자신의 상금이 1만달러로 남자 우승자의 25천달러보다 확연히 적은 것에 불만을 표출하며 상금이 동일화되지 않으면 이듬해 대회 참가를 보이콧하겠다고 발표하자 US오픈은 1973년 그랜드슬램 사상 처음으로 남녀 상금의 동일화를 전격적으로 결정한 것이다. 킹의 노력으로 첫 삽은 떴으나 4대 그랜드슬램 중 가장 마지막으로 윔블던이 지난 2007년 남녀 상금 동일화를 결정하기까지 무려 34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으니 2000년대 들어 큰 목소리를 낸 윌리엄스 자매의 노력 역시 박수 칠만한 일이다. 
 
최초 비디오 판독 호크아이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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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오픈은 그랜드슬램 최초로 호크아이를 도입했다
 
2001년 크리켓 경기의 TV 중계용으로 개발된 호크아이는 사실 테니스에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기술이었다. 최다 9명의 라인즈맨과 높은 의자에 올라 경기 전체를 관할하는 체어 엄파이어가 존재하는 테니스에서는 수많은 눈이 지켜보기 때문에 오심이 나오는 확률이 극히 적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오심이 나오더라도 이는 경기 일부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믿음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며 호크아이 도입의 필요성을 일깨워준 결정적인 경기가 있었으니 바로 지금도 회자되는 2004 US오픈 세레나 윌리엄스(미국)와 제니퍼 카프리아티(미국) 8강이었다. 이 경기에서 총 5개의 오심이 나왔다. 특히 가장 중요한 마지막 세트의 마지막 게임에서 무려 3개의 오심이 나오며 경기 전체의 흐름을 뒤흔들어 놓은 것이다. 심지어 마지막 오심은 듀스 상황에서 발생해 카프리아티에게 매치포인트를 헌납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4개의 오심이 세레나가 코트 안쪽으로 친 공에 대해 아웃을 선언했고 1개의 오심은 카프리아티의 더블 폴트를 잡아 내지 못해 인종 차별 논란으로까지 이어지는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결국 당시 체어 엄파이어였던 마리아나 알베스는 남은 경기에서 제외됐고 미국테니스협회(USTA)의 공식 사과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전 세계 테니스 팬들을 경악하게 만든 이 경기는 호크아이를 도입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듬해 1년간의 테스트 기간을 거쳐 2006 1월 이벤트 대회인 호프만컵에서 사상 최초로 호크아이를 시행했고 그해 US오픈은 그랜드슬램 사상 처음으로 호크아이를 도입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탄생 배경은 씁쓸한 면도 있지만 자신의 실수를 받아들이고 재발 방지를 위해 과감하게 칼자루를 뽑아 든 US오픈의 결정이 지금 돌이켜보면 테니스계의 발전을 위한 올바른 결정이었다는 생각이다
 
마지막 세트 타이브레이크 도입
US오픈에서만 볼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은 바로 마지막 세트에 타이브레이크를 적용한다는 점이다. 타이브레이크는 지난 1965년에 만들어진 규정으로 롱게임 방식 때문에 밑도 끝도 없는 마지막 세트로 인해 늦은 오후의 칵테일 파티 참석에 종종 늦게 된 고객들의 불만에 기인하여 발명된 작품(?)으로 US오픈이 1970년에 그랜드슬램 사상 처음으로 도입했다.
 
호크아이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세트 타이브레이크 역시 도입을 촉발한 경기가 있었으니 바로 196922-24 1-6 16-14 6-3 11-9로 끝난 판초 곤잘레스(미국)와 찰리 파사렐(미국)의 윔블던 1회전이었다. 5시간 12분이 걸린 이 경기는 테니스 역사에 남긴 하였으나 무턱대고 길어지는 경기를 이대로 둘 수만은 없는 과제를 남겼다. 결국, US오픈이 총대(?)를 메고 이듬 해인 1970년 바로 타이브레이크를 시행했다.
 
2게임 차이가 났을 때에만 경기가 끝나고, 한 세트에 몇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사실조차 게임의 일부라고 여기던 당시 마지막 세트의 타이브레이크 도입은 진 선수로서는 왠지 억울할 수 있거나 경기 전체의 질을 반감시킨다는 반대 또한 격렬하였다. 하지만 도입 후 경기 종료 시간의 예측이 확실해지자 시청자와 TV 방송국 모두 큰 만족도를 나타내며 환영하는 의외의 결과를 나타냈다. 이윽고 다른 그랜드슬램 또한 타이브레이크를 도입했으나 전통을 지킨다는 이유 때문에 원래대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타이브레이크 촉매제 역할을 했던 경기가 열린 윔블던은 아직도 마지막 세트 타이브레이크를 도입하지 않고 있고 2010년 역사상 길이 남을 존 이스너(미국)와 니콜라스 마휘(프랑스)1회전 마지막 세트에서 70-68이라는 믿기 힘든 스코어가 나왔다. 
 
US오픈은 변화에 능동적인 편인데 마지막 세트 타이브레이크의 경우 US오픈 대회 스케줄의 효율성과도 맞닿아 있다. US오픈은 둘째 주 토요일을 슈퍼 토요일이라 부르며 남자 단식 4강 두 경기와 여자 단식 결승 경기를 나란히 배치하는데 마지막 세트 타이브레이크가 원활한 대회 운영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면 정작 황금 시간대에 열려야 할 여자 단식 결승이 밀려나는 우스꽝스러운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US오픈은 슈퍼 토요일의 확실한 보장을 위해 지금까지도 마지막 세트 타이브레이크를 도입하고 있고 이 제도는 US오픈만의 특별함으로 남아 있다.
 
최초의 그랜드슬램 하드코트와 야간 경기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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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슬램 최초로 야간 경기를 시행한 US오픈
US오픈으로부터 시작된 또 다른 혁신은 바로 최초의 하드코트 그랜드슬램이라는 점과 야간 경기가 가능하도록 최초로 조명을 설치했다는 점이다. 1881년 대회 개막 후 줄곧 잔디코트에서 펼쳐졌던 US오픈은 하드코트로의 전환을 위해 1975년부터 3년간 임시로 클레이코트에서 치러졌는데 이후 1978년 지금의 플러싱 메도우에 지어진 USTA 내셔널 국립테니스센터로 터전을 옮긴 후 본격적인 하드코트 그랜드슬램으로서의 서막을 올렸다. 1988년 호주오픈이 역시 잔디코트에서 하드코트로 전환하기 전까지 유일한 하드코트 그랜드슬램으로 원조의 자부심을 충분히 가질 만하다.
 
앞서 언급한 클레이코트 시절에 또 하나의 역사가 이뤄졌는데 바로 그랜드슬램 사상 최초로 조명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늘 햇살이 내리쬐는 낮에만 경기하는 것에 익숙했던 테니스 팬들에게 밤에도 즐길 수 있도록 한 조명의 도입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는데 조명 불빛과 공의 그림자로 인해 선수들의 집중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는 달리 선수들의 큰 호응을 얻으며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야간 경기를 처음 시행한 1975년에는 테니스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경기 또한 탄생하였다. 당시 클레이코트의 황제 기예르모 빌라스(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마누엘 오란테스(스페인)는 남자 단식 4강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1-2로 뒤진 네 번째 세트 0-5 상황에서 극적으로 뒤집고 최종 스코어 4-6 6-1 6-2 7-5 6-4로 승리하며 야간 경기를 보기 위해 모인 관중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현재는 US오픈 뿐만 아니라 호주오픈과 윔블던 역시 전체 또는 일부 코트에서 야간 경기를 도입하고 있지만 프랑스오픈만 아직도 야간 경기를 시행하지 않아 일몰로 인해 경기가 다음 날로 순연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다행히도 2020년부터 프랑스오픈도 모든 코트에 조명을 설치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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