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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강렬하고 매력적인 잔디코트 시즌
전채항 객원 기자 ( loveis5517@tennis.co.kr ) | 2018-07-12 오후 5:50:22
윔블던 잔디 관리자가 잔디상태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사진= GettyImagesKorea
[테니스코리아= 전채항 객원기자]올해 잔디코트 시즌은 6월 둘째 주부터 테니스 대회의 최고봉 윔블던이 끝나는 7월 둘째 주까지 약 5주간으로 이제 3일 정도 남았다.
 
거의 한 달 남짓 진행되는 잔디코트 시즌은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기 마련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구석이 많은 매력적인 기간이기도 하다. 우리가 지금까지 간과해왔던 잔디코트의 특별한 이야기를 모았다.
 
#잔디코트 그랜드슬램, 윔블던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4대 그랜드슬램 중 잔디코트에서 열리는 대회는 윔블던뿐이다. 하지만 과거 프랑스오픈을 제외하고 다른 그랜드슬램 코트는 모두 잔디코트에서 열렸다.
 
호주오픈은 영국의 지대한 영향을 받은 자국의 역사를 반영하듯 1905년 첫 대회부터 잔디코트에서 열리기 시작했는데 잠시 시행한 것이 아니라 1987년까지 무려 83년 동안 잔디코트에서 열려 윔블던 못지 않은 잔디코트의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했었다. 그러나 1988년에 완공된 멜버른 파크로 보금자리를 이동하면서 코트 표면을 잔디에서 하드로 전격 교체하는 큰 변화를 수용하게 되었다.
 
변화의 가장 큰 이유는 코트의 유지 문제였는데 호주오픈이 열리는 1월은 악명 높은 더위 때문에 대회가 진행될수록 잔디가 급격히 망가졌고 심지어 첫째 주가 끝나기도 전에 이미 코트의 반 이상이 흙으로 변해버리는 악순환이 매년 지속되자 조직위원회는 코트의 변화를 심각하게 고려했다.
 
때마침 전 세계적으로 불어온 하드코트의 선호에 따라 호주 전역으로 하드코트가 보편화되면서 하드코트로 교체하자는 주장은 더 큰 힘을 얻게 됐고 급기야 기존 대회 장소인 쿠용 파크가 더 이상 대회 규모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새로운 보금자리를 지어야 했다. 그리하여 호주오픈은 하드코트로의 변화를 결정하였고 하드코트의 종류 역시 호주 브리즈번에 본사를 둔 ‘Rebound Ace’라는 제품을 선택하며 타당한 근거 역시 마련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US오픈은 호주오픈보다 더 빨리 변화를 수용했다. 이유 역시 자본주의에 입각한 자국의 특성을 확실히 반영했음을 알 수 있다.
 
US오픈은 처음 대회가 시작된 1881년부터 미국 동부 지역의 잔디코트에서 개최됐는데 1915년부터는 뉴욕주에 있는 웨스트사이드 테니스 클럽이라는 사설 코트에서 줄곧 열렸다. 하지만 관중 수용 한계와 더불어 사설 클럽에서 보이는 다소 권위적인 태도에 미국테니스협회(이하 USTA)는 불만이 있었다.
 
USTA는 이후 장소를 옮길 기회를 계속 엿보았고 결국 1975년 그 꿈을 이룰 수 있었다. 현재 US오픈이 열리고 있는 뉴욕의 플러싱 메도우에 대규모의 USTA 국립테니스센터를 건립하면서 US오픈은 코트 재질 역시 잔디코트에서 하드코트로 변경했는데 이는 호주오픈의 사례와 매우 유사하지만 상당히 현실적인 이유가 가미되었다.
 
바로 당시 ‘DecoTurf II’라 불리는 다소 느린 편에 속하는 하드코트 재질이 미국에서 개발되어 선풍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었고 대부분 지역 클럽 및 학교들이 이 재질을 사용하자 USTA는 주니어 육성 차원에서 US오픈도 같은 재질의 코트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며 코트 재질에 변화를 주었다. 무엇보다 대회가 열리는 2주를 제외한 50주를 대중에게 개방하기로 뉴욕주와 합의함에 따라 코트의 재질을 하드코트로 바꾸는 것이 타당해진 것이다.
 
이처럼 한 해 동안 진행되는 4대 그랜드슬램이 2개의 하드코트(호주오픈과 US오픈), 1개의 클레이코트(프랑스오픈) 그리고 1개의 잔디코트(윔블던)에서 각각 열리고 있는 와중에 만약 호주오픈과 US오픈이 계속 잔디코트에서 열렸다면 잔디코트의 위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마어마하지 않았을까.
 
이제는 윔블던만이 잔디코트의 전통을 유지하며 한 달여 남짓 정도로 축소된 잔디코트 시즌의 대표주자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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윔블던이 열리는 올잉글랜드테니스클럽. 세계 테니스 대회 중 최고의 권위와 전통을 자랑하는 윔블던은 잔디코트에서 열린다. 사진= GettyImagesKorea
 
#잔디가 닳을수록 누구에게 유리할까?
윔블던을 포함한 잔디코트 대회를 보면 코트의 색깔이 대회 초반과 막바지를 비교했을 때 확연히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잘 정돈된 잔디로 인해 코트 전체가 밝은 초록색을 띠는 대회 초반보다 시간이 거듭됨에 따라 선수들의 움직임이 집중되는 베이스라인 뒤쪽부터 시작해 코트의 반 정도가 흙처럼 변해버리는 것이다. 잔디가 수없이 짓밟힘에 따라 닳아 없어지고 결국 그 공간은 흙 바닥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코트가 이 상태로 변해버렸을 경우 어떤 선수에게 유리할까?
 
먼저, 잔디코트에서 공이 바운드되는 원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드코트와 클레이코트에서 공이 바운드 될 시 저항력이 낮은 편에 속하고 일부 재질 표면의 경우 공이 지면에 닿았을 때 공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바운드도 높고 공의 속도도 상당히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잔디코트의 경우 공이 지면에 닿으면 잔디의 표면 위에 안착하게 되고 뒤로 접힌 잔디가 앞으로 이동하면서 저항력이 더해져 공이 바운드 되는 높이가 매우 낮아지게 된다. 따라서 공은 낮게 바운드 되고 속도가 붙는 특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이유로 잔디코트는 빠른 플레이를 선호하는 서브 앤 발리어 또는 강서브를 구사하는 선수에게 유리하게 작용하는 편이다.
 
반면, 잔디가 닳아 없어지고 흙이 드러난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흙이란 성격으로 인해 바운드는 더 높아지고 공의 속도는 잔디에서보다 더 감소된다. 어찌 보면 클레이코트화 되는 것인데 차이점은 표면이 고른 클레이코트에 비해 잔디의 일부분 또는 뿌리가 남아있는 지형으로 인해 불규칙 바운드가 쉴 새 없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대회 후반부로 갈수록 흙 바닥이 된 코트에서는 랠리형 선수가 유리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주장이나 꼭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공의 바운드와 스피드는 공이 지면에 닿는 위치에 영향을 받는데 흙 바닥이 된 부분은 주로 베이스라인과 서브가 몰리는 T존이기 때문이다.
 
가령 스트로크가 길게 뻗으며 베이스라인 근처에 떨어진다면 이에 해당될 수 있지만 서비스라인과 베이스라인 사이에 떨어진다면 여전히 잔디가 남아있기 때문에 공의 바운드는 빠르고 낮게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클레이코트형 선수에게 더 유리한 것은 사실이나 바운드 못지 않은 슬라이딩이 중요한 클레이코트형 플레이가 온전히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오히려 포인트를 짧게 끝내는 잔디코트형 선수가 우위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역사상 가장 독특한 잔디 코트 대회는?
현재 ATP가 총 8개, WTA가 총 6개의 잔디코트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중 그랜드슬램 윔블던을 포함 총 3개의 대회가 같은 장소에서 남녀 대회가 동시에 또는 번갈아 열리는 점을 감안하면 개별 대회의 특색은 다소 약하다. 잔디코트의 유지 자체가 대회조직위원회에게 매우 큰 부담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현재 열리고 있는 잔디코트 대회 운영진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잔디코트 대회의 최고봉이자 대표주자는 단연코 테니스의 아이콘 윔블던일 것이다. 1877년 처음 열린 이래 무려 140년 이상 이어온 전통 있는 윔블던은 매우 보수적인 운영으로도 유명하다.
 
선수들의 경기복 95% 이상을 전부 흰색으로 규정한 것은 물론 스폰서의 배너를 코트 내 일절 금지하고 있다. 또한 규정은 아니지만 센터코트에서 경기하는 선수는 나란히 퇴장해야 하며 영국의 로열 박스를 향해 인사를 한다는 매너를 중요시하는 등 윔블던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모습이 윔블던만의 특색을 대변하고 있다.
 
하지만 윔블던에서 열렸지만 윔블던의 전통을 과감히 깬 대회가 있었다. 바로 2012년 런던올림픽이었다. 영국에서 열린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 테니스 종목은 누구나 예상했듯이 윔블던에서 열렸다.
 
올림픽이라는 특성상 윔블던만의 독특한 규정을 적용할 수가 없어 사상 처음으로 윔블던 코트는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 깔끔하면서도 심심할 수도 있던 코트 내부가 온통 런던올림픽을 상징하는 보라색 배너로 물들었고 선수들은 평소 금기시됐던 화려한 색상의 의상을 보란 듯이 입고 윔블던 센터코트에 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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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광경은 ‘All White’로 대변되던 윔블던의 오래된 이미지와 충돌하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는데 국기를 상징하는 빨간색과 남색을 적절히 매치했던 미국과 영국 선수들, 강렬한 빨간색 위주로 온몸을 감쌌던 스위스와 러시아 선수들, 여느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자국의 대표 색깔인 노란색과 하늘색을 각각 입고 나온 호주 선수들과 아르헨티나 선수 들의 화려한 유니폼이 윔블던의 초록색 코트와 만나며 다소 생소하고 어색하지만 신선한 장면을 팬들에게 선사하기도 했다.
 
글= 전채항 객원기자,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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