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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앙투카에서의 잊지 못할 그때 그 순간들
박준용 기자 ( loveis5517@tennis.co.kr ) | 2018-06-01 오후 3:27:01
프랑스오픈 센터코트 필립 샤트리에 코트 전경. 사진= GettyImagesKorea
지난 5월 27일에 시작된 프랑스오픈이 중반을 향해가면서 대회의 열기가 앙투카의 붉은 빛깔처럼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4대 그랜드슬램 중 유일하게 앙투카에서 열리는 프랑스오픈은 지난 1891년에 처음 시작해 제1차세계대전 등으로 열리지 못한 것을 제외하면 올해로 122회째를 맞이했다.
 
셀 수 없는 발자국과 눈물 자국이 지나간 앙투카 위에서 올해도 새로운 역사가 탄생할 것이다. 그동안 앙투카에서 펼쳐진 감동과 환희의 역사적인 페이지들을 모았다.
 
<2003년 6월 7일 토요일>
“언젠가 내가 저기 있을 거야” 약속 지킨 에넹

 
 
1992년, 막 10살이 된 저스틴 에넹(벨기에)은 엄마와 함께 모니카 셀레스(미국)와 슈테피 그라프(독일)의 결승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에넹은 엄마에게 다짐하듯 말한다. “언젠가 제가 저 자리에 설 거에요!” 11년이 지난 뒤 소녀는 약속을 지켰지만 안타깝게도 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 1995년 3월 암으로 세상을 떠난 프랑수아즈는 딸 ‘주주’가 우승 트로피에 입 맞추는 순간을 지켜보지 못했다. 시상식에 선 에넹은 엄숙했다.
 
“이 영광을 천국에 있는 엄마에게 바치고 싶다. 엄마, 절 자랑스러워해 주세요.” 에넹은 이어 “오늘 아침, 엄마와 약속을 나눴던 자리를 찾았다. 경기 내내 엄마의 힘이 느껴졌다. 그녀의 바람을 알았기에 정말 이기고 싶었다”고 전해 감동의 도가니를 만들었다.
 
<1983년 6월 5일 일요일>
노아, 프랑스의 영웅이 되다
 
 
야니크 노아(프랑스)가 디펜딩 챔피언 매츠 빌란더(스웨덴)와의 세 번째 세트에서 세 번째 매치 포인트를 맞이했다.
 
숨소리도 안 들리는 고요 속에서 서브를 넣은 노아, 그리고 포핸드로 리턴한 빌란더의 공이 라인 밖으로 떨어지며 경기가 끝났다.
 
이로써 노아는 프랑스 선수로는 37년 만에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하는 감격을 누리면서 개최국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선수로 등극했다.
유쾌한 이 프랑스 선수는 두 손을 번쩍 들고 깡총깡총 뛰더니 얼른 빌란더와 악수한 뒤 네트를 뛰어넘어 관중석의 아버지와 진한 포옹을 나눴다. 그 순간만큼은 우승컵보다 아버지와의 시간을 더 소중히 여겼던 노아였다.
 
<2001년 6월 6일 일요일>
이것이 바로 클린턴 효과?

 
한 국가를 움직이는 실력자 앞에서 경기를 뛰는 건 그리 흔치 않은 경험이다. 안드레 애거시(미국)에게는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1999년 프랑스오픈 우승을 차지했던 그가 2년 뒤 8강에서 세바스찬 그로장(프랑스)과 맞붙던 날,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빌 클린턴이 애거시를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허나 이게 웬일.
 
클린턴은 첫 세트 막바지에 들어오느라 애거시가 6-1로 이기는 것을 보지 못했고 자리를 지킨 두 번째, 세 번째 동안 1-6으로 죽 쑤는 모습만 보고 말았다.
 
그러다 클린턴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애거시의 경기력이 살아나 브레이크에 성공했지만 그가 돌아오자 다시 에러의 연속이었고 결국 패했다. 클린턴은 후에 “내가 애거시에게 불운을 불러오다니 본의 아니게 미안하다”며 겸연쩍어했다.
 
<2001년 6월 10일 일요일>
쿠에르텐 “내 심장을 이곳에”

 
 
이미 2차례 머스킷티어컵을 품에 안았던 구스타보 쿠에르텐(브라질)이 2001년 결승에서 알레스 코레차(스페인)를 이기고 세 번째 우승을 확정 지은 뒤 붉은 센터코트 바닥에 라켓으로 커다란 하트를 그려 넣었다.
 
“이기든 지든 내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자신의 유일한 그랜드슬램 타이틀의 장소인 파리를 특히 사랑했던 구가는 “정말 마법 같은 곳이다. 마치 고향에서 뛰는 듯하다”며 “나의 사랑, 롤랑가로스! 내가 꿈꿔온 모든 꿈이 실현된 사랑스러운 곳!”이라며 프랑스오픈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그리고 15년 뒤, 구스타보의 세리머니가 조코비치의 라켓에 의해 재현됐다.
 
2016년 조코비치가 프랑스오픈 우승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자 코트 위에 하트를 그려 그 안에 드러눕는 구스타보의 세리머니를 재현했다.
 
<1989년 6월 5일 일요일>
마이클 창의 언더암서브

 
17살 소년이었던 창은 생애 두 번째 출전한 프랑스오픈의 8강에서 부동의 1위 이반 렌들(체코)과 맞붙는다.
 
이미 세 차례의 롤랑가로스 우승 맛을 본 렌들은 세트스코어 2-0으로 앞서가며 한껏 창을 요리하고 있었다.
 
허나 안심하던 렌들의 허를 찌른 공격이 이어졌고 로브, 드롭샷, 네트 대시 등으로 포인트를 따내 다섯 번째 세트로 경기를 끌고 갔다.
 
그때 4-3으로 앞서던 창이 너무나도 유명한 언더 서브를 넣는다. 이에 충격을 받은 렌들은 게임을 내준 데 이어 더블폴트까지 범하며 패배를 당하고 만다.
 
창은 여세를 몰아 결승에서 스테판 에드베리(스웬덴)마저 꺾고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그의 나이 17세 3개월이었다.
 
<1984년 6월 10일 일요일>
‘악동’ 매켄로, 눈앞에서 우승을 놓치다

 
 
존 매켄로(미국)가 렌들과 맞붙은 결승에서 2-0으로 앞서가다 한순간에 준우승자로 전락한 매켄로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아마 다른 곳에 있었으면 하고 바랐을 것이다. 어디든 좋으니 파리만 아니면 좋겠다고.
 
렌들이 자신의 첫 프랑스오픈 우승컵을 머리 위로 치켜들고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은 반면 준우승 쟁반을 손에 쥔 매켄로는 관중들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코트에서 사라졌다.
 
1984년에 렌들과 결승에서만 총 7차례 맞붙었던 매켄로는 파리에서 유일한 패배를 기록해 더욱 억울했다.
같은 해 무려 82승 3패라는 최고의 승률을 자랑한 그였지만 ‘최고 적수’라 손꼽았던 렌들을 만난 롤랑가로스에서는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이어진 US오픈 결승에서 3-0으로 꺾으며 자존심을 회복했다.
 
<1999년 6월 5일 토요일>
눈물범벅 10대 힝기스

 
 
당시 18살의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는 이미 5개월 전에 호주오픈 3연패를 차지했으며 이번 대회만 이기면 그랜드슬래머에 등극할 수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오픈 여섯 번째 우승을 노리던 그라프와의 결승이 고비였다.
 
첫 세트를 이기고 5-4에서 결정을 짓지 못한 힝기스가 이날 더 힘들었던 건 경기력뿐이 아니었다. 심판의 판정에 강하게 항의하며 라켓을 던져 경고를 받았고 상대 코트를 넘어가 포인트도 잃었으며 나중에는 벌금까지 부과받았다.
 
결국 패한 힝기스는 뒤도 안 돌아보고 코트를 나갔고 관중들은 조롱 섞인 휘파람을 불었다.
 
엄마 품에 안겨 눈물범벅이 되어 시상식장에 선 힝기스는 “언젠가 꼭 우승하고 싶다. 그때는 내 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울먹거렸다. 하지만 그 꿈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2000년 6월 10일 일요일>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25살의 나이, 자신을 응원하는 1만6천명의 홈 관중들, 마리 피어스(프랑스)는 그제서야 비로소 두 번째 기회를 잡고 프랑스오픈 여제로 올라섰다.
 
우승컵이 손끝에 닿았다가 저 멀리 달아난 1994년, 당시 그라프를 꺾고 결승에 올랐다가 준우승에 머물렀던 피어스가 기회를 다시 잡기까지 6년이 필요했다.
 
결승전에는 프랑스 수상과 파리 시장 등 유명 인사들이 그녀의 우승을 기다렸다. 마침내 세 번째 매치포인트에서 서브 에이스로 6-2 7-5 우승의 순간, 프랑스 팬들의 성원을 등에 업고 진정한 프랑스인이 되었다는 그녀는 “결승전 첫 공부터 마지막 공까지 그들이 내 뒤를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이 들었다”며 감격을 전했다.
 
<2017년 6월 11일 일요일>
나달, ‘라 데시마(La Decima)’ 대업

 
 
남자 단식 결승이 열린 6월 11일, 대회 기간 선수들을 괴롭혔던 심술궂은 비 대신 화창한 날씨가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스탄 바브린카(스위스)를 맞이했다.
 
나달의 표정에는 여유가 있었지만 바브린카 얼굴에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경기는 나달의 일방적인 흐름이었다. 챔피언십 포인트에서 바브린카의 어정쩡한 백핸드가 네트에 걸리자 나달은 코트에 드러누우며 ‘라 데시마(10회 우승을 뜻하는 스페인어)’ 달성의 감격을 만끽했다.
 
나달은 “지금 이 기분을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 내가 프랑스오픈에서 느끼는 대담성과 아드레날린은 다른 코트와 비교하기 힘들다”며 “작년에 부상으로 기권했을 때 힘들었지만 다시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 다시 정상에 서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밝혔다.
 
대회 주최측은 나달과 함께 프랑스오픈 10회 우승을 합작한 나달의 삼촌 토니를 위해 모형 우승 트로피를 특별히 제작해 토니의 노고를 격려했다.
 
- 위 기사는 테니스코리아 2009년 5월호에 실린 기사를 재편집한 것입니다-
 
정리= 박준용 기자(loveis5517@tennis.co.kr),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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