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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 사라지고 있다! 클레이코트의 어두운 미래
전채항 객원 기자 ( loveis5517@tennis.co.kr ) | 2018-05-29 오후 6:21:22
최근 클레이코트 대회가 감소하는 등 클레이코트가 위기를 맞고 있다. 사진= GettyImagesKorea
[테니스코리아= 전채항 객원기자]현재 세계 테니스 팬들의 시선은 지난 5월 27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붉은 코트의 향연 프랑스오픈으로 향해있다. 시즌 두 번째 프랑스오픈은 4월부터 시작된 클레이코트 시즌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대회로 4대 그랜드슬램 중 유일하게 클레이코트에서 열린다. 
 
하지만 최근 클레이코트 대회가 감소하는 등 세계 테니스 무대에서 클레이코트는 홀대를 받고 있다. 붉은색이라는 클레이코트의 고정 관념을 깨고 코트 색을 바꾸는 변화에도 반응은 시큰둥하다. 어쩌면 클레이코트 대회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오픈의 클레이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클레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코트는 19세기 후반에 도입되었다. 클레이코트는 잔디코트보다 몸의 무리가 덜하고 잔디코트처럼 물을 주고, 기르고, 시시때때로 관리해줘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어 기존 잔디코트를 클레이로 변경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은 클레이코트는 미국으로 수출됐는데 1928년 영국산 벽돌의 수입 가격이 오르자 자체적으로 새로운 클레이를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일명 ‘그린 클레이’로 불린 이 발명품은 초록색을 띤 녹렴석을 갈아 만든 것으로 기존 클레이보다 가벼워 미국인들의 지지를 얻었다.
 
이후 1960년대 콘크리트 위에 카펫 표면을 씌우고 그 위에 다시 인조 고무 가루를 뿌려 클레이 느낌을 낸 ‘인조 클레이’가 탄생하는 등 클레이코트는 기술의 발달을 통해 성장해나갔다. 특히,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 클레이코트는 습하지 않고 높은 기온을 유지하는 남미와 남유럽에서 가장 사랑받고 있다.
 
클레이코트는 하드나 잔디코트에 비해 꾸준히 이슈를 제공하며 많은 관심을 받은 느낌이다. 현재 4대 그랜드슬램 중 가장 많은 상금을 자랑하는 US오픈이 과거 클레이코트에서 열렸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1881년에 처음 열린 US오픈은 1978년 플러싱 메도우에 국립테니스센터가 건립되기 전까지 잔디코트에서 열렸는데 사실 그사이 1975년부터 1977년까지는 클레이코트에서 개최됐다. 3년간 그린 클레이코트에서 열린 US오픈은 남자부에서 서로 다른 세 명의 챔피언을 배출했는데 그중 두 명이 일명 ‘클레이코트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기예르모 빌라스(아르헨티나)와 마누엘 오란테스(스페인)였으니 변화의 시기를 가장 알차게 활용한 이들이 아닐까 싶다.
 
앞서 언급된 ‘클레이코트 스페셜리스트’란 단어는 또 하나의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실내, 잔디, 하드코트의 경우 해당 코트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다고 특별히 ‘스페셜리스트’라는 표현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의 잔디나 실내코트 시즌은 너무 짧고 하드코트 대회는 1년 내내 열려 ‘스페셜리스트’가 너무 없거나 너무 많아서 그럴 수도 있겠다. 어찌 됐건 클레이코트는 톱스핀을 이용해 큰 바운드를 만들고 랠리가 길게 이어져 체력이 강한 선수에게 유리하다 보니 클레이코트에서 잘 하는 선수와 기타 코트에서 잘하는 선수가 확연히 구분된다.
 
심지어 클레이코트에서의 뛰어난 성적을 바탕으로 세계 1위까지 올라가는 선수들이 나타나며 존경의 의미로 받아들여져야 할 ‘스페셜리스트’란 호칭이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토마스 무스터(오스트리아)를 비롯한 클레이코트에서 뛰어난 기량을 펼친 선수들이 다른 코트에서는 죽을 쑤기만 했던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쟁이 촉발되며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기도 했는데 이에 대한 세간의 평가가 아직도 엇갈리고 있어 보다 더 냉정한 평가는 후세에게 물려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클레이코트에 대한 선수들의 애정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클레이코트의 제왕’으로 불리는 라파엘 나달(스페인)은 지난 2016년 선수 이사회 부회장을 맡으면서 클레이코트의 활성화를 촉구하며 클레이 시즌을 연장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주장은 유럽과 남미 선수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현재 이미 꽉 찬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ATP가 이를 검토조차 하지 않자 그는 이사회에서 중도 사퇴하는 강수를 두며 ATP에 섭섭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반대로 대회가 선수들을 섭섭하게 한 사건도 있다. 지난 2012년 ATP투어 1000시리즈 마드리드오픈은 ‘블루 클레이코트’를 선보였는데 나달과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 등 당시 최고의 선수들의 강한 질타를 받았고 다른 선수들 역시 인위적인 색감 때문인지 미끄러운 표면에 대한 불만을 나타냈다.
 
결국, 대회가 끝난 후 ATP는 최고 경영진 긴급회의를 통해 ‘블루 클레이’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기로 결의해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블루 클레이’는 탄생하자마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불운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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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마드리드오픈에서 처음 선보인 블루 클레이에 선수들의 불만이 쏟아져 결국 퇴출됐다. 사진= GettyImagesKorea
 
‘혁신’에서 ‘위기’를 맞이한 클레이코트
19세기 처음 테니스가 도입될 때만 해도 클레이코트는 혁신이라 불리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경제가 발달하고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소비자, 즉 시청자들과 대회 운영자들의 기호도 많이 바뀌게 되었다.
 
코트별 ATP투어 대회 수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극명하게 알 수 있다. 2008년 ATP는 총 70개의 대회(그랜드슬램과 호프만컵 포함)를 운영했고 이 중 약 53%에 해당하는 37개 대회가 하드코트에서, 약 36%에 달하는 25개 대회가 클레이코트에서 열렸다.
 
10년이 지난 올해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 올 시즌 전체 69개 대회 가운데 약 57%에 해당하는 39개 대회가 하드코트에서 열린다. 이는 10년 전 대비 약 4% 증가한 수치다. 반면, 클레이코트 대회는 4% 감소한 22개 대회가 열린다.
 
대회 숫자만 놓고 봤을 때도 10년 전과 비교 시 하드코트가 2개, 잔디코트가 1개 늘어난 반면 클레이코트는 오히려 3개가 줄었다. 나달이 클레이코트 대회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것이 단순한 불만이 아님을 보여주는 수치다.
 
08시즌과 올 시즌 코트별 대회 수
 
클레이코트 대회 숫자가 감소하는 원인은 기존 클레이에서 열렸던 대회가 하드코트 등으로 바뀌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2월 멕시코 아카풀코에서 열리는 아비에르토멕시카노텔셀은 새로운 변화를 꿈꾸며 지난 2014년 코트 표면을 클레이코트에서 하드코트로 변경했다. 비슷한 사례로 5월 클레이 시즌 막바지에 열리던 BMW오픈 역시 이제 더 이상 클레이에서 열리지 않는다.
 
이와 같은 변화에 대해 클레이를 선호하는 수많은 선수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데 특히 점점 고령화되는 투어에서 하드코트 대회가 많아질수록 더 빨리 몸이 망가질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며 하드코트가 더 많아지는 것에 대한 자제를 호소했다.
 
하지만 ATP 500시리즈 리우오픈마저 내년 시즌부터 클레이에서 하드로 변경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서 선수들의 불만은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홀대 받는 클레이
그렇다면 이런 현상이 벌어지게 된 속내는 무엇일까? 먼저 대회 운영진의 기호도 때문이다.
 
클레이코트 건설은 다른 코트 표면에 비해 저렴하지만 관리 자체가 매우 어렵고 특히 수준급 대회의 유치를 위한 보수 비용이 높아 관계자들이 클레이코트를 꺼리는 편이다.
 
더욱이 클레이코트를 선호하는 선수들 대부분은 스페인과 남미 등 특정 지역 선수들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들을 유치하고 싶은 대회 주최측 입장에서는 극복할 수 없는 기본적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클레이코트는 물을 뿌려 줘야하는 등 관리가 어렵다
 
단순히 말해 로저 페더러(스위스), 앤디 머레이(영국)처럼 하드코트를 선호하는 선수들은 굳이 클레이코트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하지 않고 같은 주 하드코트 대회에 출전할 수 있다.
 
이 현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준 사례가 바로 아비에르토멕시카노텔셀이다. 이 대회가 클레이코트에서 열릴 때만 해도 남미 선수들이 늘 상위권에 올랐고 하드코트를 선호하는 선수들은 같은 주에 열리는 두바이듀티프리챔피언십에 출전했다.
 
하지만 아비에르토멕시카노텔이 하드코트로 변신한 2014년부터 점점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상금이 적은 아비에르토멕시카노텔셀에 톱 랭커들의 마음이 크게 열리지 않았지만 휴양지 아카풀코에서 열리는 대회의 뛰어난 경기 운영 능력이 소문나기 시작했고 무엇보다 바로 차주 미국 캘리포니아 인디언웰스에서 열리는 BNP파리바오픈과의 지리적 접근성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톱 랭커 유치에서 두바이를 앞서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올해 두바이 대회에 단 2명의 톱20 선수가 출전한 반면, 아카풀코는 무려 8명의 선수를 유치하며 압도적인 역전에 성공했다.
 
아비에르토멕시카노텔셀이 톱 랭커 유치에서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자 리우오픈도 자극을 받았다. 리우오픈 토너먼트 디렉터 루이스 카바요는 “만약 리우오픈이 하드코트로 바뀌면 얼마나 많은 선수가 더 오고 싶어할 지 상상해보라. 아마도 멕시코오픈보다 더 화려한 라인업을 구성할 것”이라며 확고한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특히, 브라질은 2016년 리우올림픽 개최를 위해 대규모 하드코트 테니스센터를 건립했는데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방안으로 리우오픈의 코트 표면을 변경하자는 주장은 더 큰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이유는 시대 흐름의 변화이다. 요즘 선수들, 특히 차세대 유망주로 뽑히는 20대 초반의 선수들은 대체로 빠른 타점으로 강하게 치는 선수들이 많은 추세이다 보니 대부분 클레이코트보다 하드코트를 선호하고 있다. 나달 외 클레이코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기 스타가 없고 차세대 선수 중에도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앞으로 클레이코트의 미래 또한 어둡게 만들고 있다.
 
환경의 변화도 클레이코트 대회의 감소에 큰 영향을 미쳤다. TV 중계가 대회 성공의 핵심이 될 정도로 상업화된 현대 사회에서 클레이코트 대회는 TV에 매우 어울리지 않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랠리가 길어지며 한 경기가 길게는 3시간을 넘는 경우가 많아 방송국 입장에서는 중계를 꺼리게 되고 연한 색깔의 인조 클레이일 경우 강한 햇살에 공이 잘 보이지 않아 TV로 시청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이 대두되고 있다.
 
어쩌면 미래에 클레이코트에서 나달 같은 선수를 못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에 반해 하드코트는 진행이 클레이코트보다 빨라 방송국 입장에서는 부담이 덜 하고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로 많은 시청자와 나아가 관중들을 끌어모을 수 있어 대회 운영자에게는 하드코트 대회 유치가 매우 큰 유혹으로 다가온다.
 
또한, 파란색이 공과 대비되어 더 확실한 집중을 이끌 수 있다는 주장 또한 설득력 있으며 과거 마드리드오픈이 블루 클레이로 잠시 변화를 꾀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각종 스폰서 및 TV 광고 판매가 절대적인 대회 운영진 입장에서는 시대적 흐름의 변화가 어찌 보면 대회를 더 오래 유지하기 위한 피치 못할 변화라고 주장할 수 있다.
 
지난 2월에 열린 뉴욕오픈이 새롭게 선보인 검정색 하드코트가 극찬을 받았듯이 새로운 변화를 꾀하고 나달을 잇는 새로운 스타가 나온다면 클레이코트는 예전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다. 결국, 시장은 수요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이다.
 
글= 전채항 객원기자, 사진= 테니스코리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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