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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스 자매의 성공 스토리에 숨겨진 Fact 3
박준용 기자 ( loveis5517@tennis.co.kr ) | 2017-03-06 오후 4:20:35
올해 호주오픈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한 윌리엄스 자매. (오른쪽이 우승자 세레나, 왼쪽이 준우승자 비너스). 사진= 테니스코리아
[테니스코리아= 전채항 객원기자]30차례 그랜드슬램 단식 우승, 6개의 올림픽 금메달, 자매 모두 세계 1위 기록하는 등 테니스 역사를 쓰고 있는 언니 비너스와 동생 세레나 윌리엄스 자매. 지난 1월 막을 내린 호주오픈에서 14년 만에 자매가 나란히 결승에 오르며 역사는 아직도 진행 중임을 전 세계에 다시 알렸다.
 
이제는 더 이상 다른 수식어가 필요 없을 정도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Great Of All Time, GOAT라는 약칭으로 불림)’에 거론되는 등 테니스를 떠나 전 스포츠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중인 그녀들이 새삼 재주목 받고 있는 가운데 평소에 잘 알려지지 않은 그녀들의 이야기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Fact 1
빈민가에서 시작된 동화 같은 이야기가 사실은 계획된 일?
윌리엄스 자매는 이미 잘 알려졌듯이 미국 내 가장 빈곤하고 위험한 동네로 악명이 높은 캘리포니아 남부 콤튼 출신으로 변변한 시설도 갖추어지지 않은 곳에서 집념과 실력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지금의 자리로 올라선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시작이 사실은 철저한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윌리엄스 자매 아버지 리처드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루이지애나주를 떠나 시카고에 정착한다. 그곳에서 만난 여인과 첫 번째 결혼 후 이혼한 그는 훗날 비너스와 세레나의 어머니가 될 오라씬 프라이스를 만나 비너스의 임신과 동시에 두 번째 결혼에 골인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TV를 통해 규칙도 정확히 모르는 테니스 경기를 보게 되었고 당시 우승자가 우승 상금으로 4천달러를 받는 모습을 목격한 순간 그와 그의 가족 모두의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
 
그는 당시 부인에게 “나흘 동안 일한 것 치고는 엄청난 액수인데 이제 우리 사이에 태어날 아이는 테니스 선수가 될 것이고 앞으로 우린 부자가 될 거야”라는 말과 함께 총 78장에 다다르는 장기인생계획서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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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의 윌리엄스 자매와 리처드
 
여기까지가 세상에 많이 알려진 내용인데 맹점은 이날의 장소가 많이들 알고 있는 것처럼 콤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바로 시카고였으며 콤튼은 리처드가 낙점하여 자발적으로 떠난 선택적 시발점이었다.
 
콤튼은 로스앤젤레스 남쪽에 있는 도시로 당시 흑인과 히스패닉이 대부분이었다. 거의 모든 주민이 저소득층의 빈민가였으며 갱단의 활동이 집중된 우범지역으로 살인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던 대표적인 위험구역이었다.
 
콤튼에는 당시 2개의 공용 테니스장이 있었는데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깨진 유리병 조각, 마리화나 꽁초 등 쓰레기가 넘치고 낮에는 근처에서 총성 소리가 들릴 정도로 매우 열악한 상황이었다.
 
리처드는 손수 코트 관리에 나섰으며 매일 코트를 정리해 훈련을 시작하였다. 콤튼에서의 훈련은 코트 상황뿐만 아니라 외적인 상황이 더 무서웠는데 당시 백인 스포츠로 결부되던 테니스를 하는 이들 가족의 모습이 달갑지 않았던 갱단은 어느 날 시비 끝에 리처드를 폭행했다
.
리처드는 갈비뼈 7개와 이가 10개나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이 지나 완쾌된 후 자기를 폭행한 갱단의 두목을 찾아가 복수를 감행해 ‘King Richard’로 불리며 더 이상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다고 한다.
 
리처드가 콤튼을 선택한 이유는 위와 같은 교육 방침 때문이었지만 ‘콤튼 출신’이라는 극적인 요소를 얻기 위함이었음을 훗날 본인도 부정하지 않았다.
 
Fact 2
비너스가 오랜 시간 현역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WTA 때문?
지금은 WTA의 나이 규정으로 인해 15세 이하는 프로 무대에 데뷔할 수 없고 데뷔 후에도 나이에 따라 출전할 수 있는 대회 개수가 정해지다 보니 10대 선수들의 활약을 예전만큼 보기가 힘들다.
 
일명 ‘카프리아티 법’이라 불린 이 규정은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어린 선수들이 일찍 투어에 데뷔해 성공한 후 갑자기 동기부여를 잃고 은퇴하는 폐해를 막기 위해 지난 1995년부터 제정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규정으로 비너스가 더 빨리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시간을 되돌려 비너스가 10살이던 1990년으로 돌아가 보자.
 
비너스는 9살 때부터 캘리포니아 10세 미만 주니어 대회에 출전했는데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았음에도 타고난 실력을 바탕으로 자신이 출전한 18개 대회에서 우승을 싹쓸이하고 68승 무패를 기록하며 미국 서부의 유명인사가 됐다.
 
특히, 땋은 머리에 비즈를 감은 독특한 헤어스타일, 긴 팔과 다리, 또한 흑인이라는 점이 유명세에 불을 붙였고 당시 제2의 카프리아티를 찾던 언론에 낙점돼 1990년 <뉴욕 타임스> 7월호에 소개되기에 이르게 된다.
 
카프리아티를 발굴한 코치의 에이전시 담당자가 이 기사를 읽고 릭 매씨 코치에게 비너스를 만나볼 것을 추천하였다.
 
콤튼에 도착한 매씨는 1시간 정도 비너스와 세레나의 연습을 지켜봤는데 극단적인 오픈 스탠스와 온갖 머리, 팔, 다리가 휘날리는 전혀 다듬어지지 않은 자세를 보고는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헛걸음했다고 생각한 순간 리처드는 코치에게 비너스, 세레나와 각각 1:1 대결을 해볼 것을 제안하였다.
 
그런데 이 연습 경기에서 자매들의 진가가 발휘됐다. 절대 지지 않으려는 승부욕과 함께 아웃되는 공까지 쫓아가며 온갖 자세를 통해 공을 받아내는 유연성과 근성, 파워 넘치는 서브와 스트로크를 보며 이들의 가능성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고 한다.
 
결국, 매씨는 비너스와 세레나를 무료로 가르치겠다는 파격 조건과 함께 윌리엄스 가족이 플로리다로 올 것을 제안하였고 2주 후 플로리다에서 매씨와 리처드의 공동 훈련이 시작됐다.
 
비너스는 11살이 되어 12세 이하 대회에 출전하였는데 경기보다는 학업이 더 중요하다는 리처드의 결정에 따라 1990년 봄 이후 주니어 경기에는 일절 출전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94년 앞서 언급한 ‘카프리아티 법’이 이듬해부터 적용된다는 소식이 알려졌고 결국 1994년 여름경 매씨는 리처드에게 새 규정을 적용받지 않고 그 해 데뷔할 것인지 아니면 좀 더 늦게 데뷔하고 연간 출전횟수 제한을 받을지 조언을 구하였는데 리처드의 성격상 답은 너무 당연했던 것이다.
 
에이전시의 노력 끝에 시즌 말미인 10월 31일 오클랜드에서 열리는 Bank of the West Classic에 와일드카드를 받고 출전하며 예상했던 것 보다 빠른 14세의 나이로 비너스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참고로 비너스의 출전 소식이 알려지며 전년도 28개에 불과하던 취재 매체 수는 296개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 비너스에 대한 테니스계의 관심을 입증했으며 한때 세계랭킹 20위권까지 올랐던 당시 57위 선수를 1회전에서 무실세트로 완파하자 비너스의 등장은 메가톤급 뉴스가 되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어린 윌리엄스 자매를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취재진들. 사진= GettyImages/이매진스
 
2회전에서 당시 세계 1위 아란차 산체스 비카리오(스페인)에게 6-4 3-1로 리드해 전 세계를 한 시간 동안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는데 이후 갑자기 내리 11게임을 내주며 무너지지 않았다면 아마 데뷔 후 이틀 만에 세계 1위를 격파하는 전무후무한 기록도 덤으로 세웠을지도 모른다.
 
Fact 3
장수의 비결은 승부욕과 호기심 그리고 직관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38세 비너스와 36세 세레나가 무려 20년 넘게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투철한 승부욕이 우선일 것이다. 이는 주로 세레나에 해당되며 그녀는 어릴 때부터 경쟁이 붙으면 무조건 자신이 이겨야 한다는 승부의 아이콘이었다고 한다.
 
코트에서도 세레나 승부욕을 따라갈 자가 없는데 지난 2012년 프랑스오픈 1회전 탈락 후 행동은 가장 세레나다운 행동이지 않았나 싶다.
 
보통 충격의 탈락 이후 선수들은 휴식을 갖지만 세레나는 바로 다음 날 지인의 추천으로 알게 된 현 코치 패트릭 무라토글루에게 일면식도 없는 상태에서 전화를 걸어 훈련을 요청했다. 세계 1위임에도 불구하고 더 발전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매일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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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욕이 강한 것으로 유명한 세레나. 사진= 테니스코리아
 
비너스와 세레나의 공통점은 건강상 큰 위기를 겪으며 공백기 후 컴백을 가진 적이 있다는 점이다. 보통의 선수들과 비교할 때 그 공백기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보면 역시 윌리엄스답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언니 비너스는 근육의 피로도를 증가시켜 체력을 저하시키는 쇼그렌 증후군을 진단받은 2011년부터 투어에 거의 나서지 못했는데 그동안 자신이 운영하는 패션업체 EleVen의 경영 목적이자 학구열을 불태우기 위해 인디애나대학교에 학사와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특히 회계 분야에 큰 관심을 보이며 더 발전하는 CEO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였다.
 
언니보다 호기심이 강한 세레나는 Home Shopping Network사와 손잡고 여성 일상복 라인을 내고 뉴욕 패션위크까지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2011년 폐색전증을 겪을 때는 네일에 관심을 갖고 플로리다에 있는 네일 학교의 온라인 코스를 수료했고 어머니와 아프리카에 봉사활동을 다녀오며 인생에 서의 가치관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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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는 세레나. 사진= GettyImages/이매진스
 
비너스와 세레나는 직관을 믿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비너스의 경우 인권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과거 빌리 진 킹에 이어 남녀평등을 바탕으로 그랜드슬램 우승상금의 남녀차별을 없애기 위해 늘 목소리를 높였고 결국 현실로 이뤄지는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다수의 자선활동에 참여해 롤모델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으며 인종 차별 이슈로 14년간 보이콧했던 BNP파리바오픈에 자발적으로 다시 출전하며 용서와 이해에 대한 감동적인 칼럼을 기재해 찬사를 받기도 했다.

 
글= 전채항 객원기자, 사진= 테니스코리아, GettyImages/이매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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