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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체육 테니스의 뿌리, KATA 성기춘 회장
작성자 : 김진건 기자
등록일 : 2019-11-20 오후 3:03:14
조회수 : 460

테니스를 향한 여전히 뜨거운 열정. 생활체육 테니스의 뿌리, KATA 성기춘 회장
생활체육 테니스의 역사이자 든든한 후원자인 한국테니스진흥협회(이하 KATA) 성기춘 회장. 그가 어느새 칠순이 됐다.
 
11월 21일, 15년차를 맞이한 동운배(同雲은 성 회장의 호이다) 개최를 앞두고 있는 성 회장을 남양주 문화센터 테니스클럽에서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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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세에 테니스를 처음 접했던 성기춘 회장은 어느새 33년의 경력을 보유한 동호인이 되었으며 23년 동안 KATA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전국 아마추어 테니스가 발전하는 데 1등 공신의 역할을 지금까지도 해내고 있다.
 
동호인 테니스 랭킹제를 직접 확대 발전시킨 장본인이자 7년간 1위를 놓치지 않았던 동호인 테니스 최강자인 성 회장은 수많은 우승은 물론 전국대회 개최에도 앞장섰다.
 
동호인 테니스를 위해 수십 년간 노력했던 성 회장은 올해 칠순이 되면서 15년차를 맞이한 동운배를 의미있게 치르고 싶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성 회장은 “이번에 칠순을 맞아 동운배의 규모와 질을 더욱 확대시켜서 개최할 예정이다. 선수들에게 점심도 제공하고 60~70대 시니어부도 함께 진행한다. 1천500여명 정도가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미 내년에도 두 개의 대회를 새로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내년 4월에는 FILA와, 5월에는 최근 급성장한 IT업계 벤처기업의 후원을 받아 대회가 진행된다”라며 “그동안 한 해에 두 개의 그랜드슬램 투어 대회가 있었다면 내년에는 4대 그랜드슬램을 모두 가보는 것이 목표다”라고 전했다.
 
성 회장은 대회 우승자들과 함께 그랜드슬램이 열리는 도시를 방문하였는데 이는 개인의 즐거움도 있지만 동호인들에 대한 성 회장의 애정이 담겨있었다.
 
성 회장은 이에 대해 “단지 테니스 경기만 볼 것이 아니라 동호인들이 해외 투어를 기회로 삼아 식견도 넓히고 해외 문물을 접했으면 한다. 살면서 한 번도 가기 힘든 그랜드슬램 대회이다. 다녀온 사람에게는 얼마나 뜻 깊은 추억이 되겠는가”라고 설명했다.
 
사선을 넘고 만난 테니스, 쉽지 않았던 동호인 랭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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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 넘게 이어온 성 회장의 무한 테니스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이었을까.
 
너무 드라마틱한 삶을 지나온 그이기에 알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이다. 그는 30대 초반의 나이에 만성간염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당시 병원에서도 마음의 준비를 마치라는 뜻을 가족들에게 전했다고 한다.
 
그는 “막막이라는 단어로도 설명할 수 없다. 그냥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미 가족들과의 회의를 통해 큰 형님에게 아이를 입양시킬 결정도 끝냈었다. 하지만 내게 기적이 일어났다. 하루하루 몸이 좋아지기 시작하더니 병을 이겨내고 살아 남았다. 참으로 하늘이 도왔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만성간염을 이겨낸 성 회장은 친구가 테니스를 하는 모습을 보고 테니스에 입문했다. “도대체 테니스가 얼마나 재미있길래 그 친구가 매일 테니스를 하는 지 궁금했다. 그리고 워낙 운동을 좋아해서 금방 친구를 따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테니스를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인생에서 가장 두려운 죽음을 이겨내고 만나게 된 테니스는 성 회장에게 크나큰 즐거움을 줬다.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개인 훈련과 레슨을 받으며 꾸준히 연습 했고 이러한 자기관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는 “대회를 나가면 평균 다섯 경기 정도 하는 데 여전히 거뜬하다. 물론 체력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무리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라고 현재의 건강한 몸 상태를 전했다. 그렇다면 아직까지도 그가 빠져있는 테니스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테니스는 세계적으로 으뜸인 스포츠 중에 하나이며 전신을 활용하는 운동이다. 친화력에도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처음에 접하기가 힘들고 경기가 가능한 수준까지 꽤 시간이 걸리지만 그 시기만 이겨낸다면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큰 병을 이겨냈고 테니스라는 새로운 즐거움을 찾았지만 이후로도 성 회장에게 행복했던 나날만이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1995년 현 서울시체육회 주원홍 수석부회장과 더불어 5명의 인원으로 대한테니스협회 동호인위원회를 만들었고 테니스코리아가 대회별로 자료를 수집해 동호인대회 랭킹을 발표, 관리했다.
 
동호인들 사이에서 랭킹을 정한다는 것은 굉장히 획기적이었지만 처음만 하더라도 랭킹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생각해보자. 내가 동네에서 가장 테니스를 잘 하는 데 대회에서 초반 탈락해 나보다 더 못하는 사람의 랭킹이 더 높아질 수도 있다. 무척 예민한 문제였고 나도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고 동호인들을 설득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한 노력의 덕분인지 2년 정도 지나고 랭킹제는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라며 인내하고 사람들을 설득했던 당시를 설명했다.
 
실제로 동호인 랭킹제는 한국 테니스 동호인들이 실력 향상에 힘쓸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줬다. 이는 대회 개최에도 한 몫을 하면서 세계적으로도 밀리지 않는 동호인 테니스 발전에 이바지 했다.
 
성 회장은 최근 한국 동호인 테니스가 발전했다는 느낌을 받았던 일화를 이야기해줬다.
 
그는 “한, 두 달 전 동호인 테니스에 대한 논문을 쓴다는 사람이찾아왔다. 그녀는 전 세계적으로 동호인 테니스가 이렇게 발전한 곳은 한국 밖에 없다면서 동호인 테니스가 발전해 왔던 과정과 성과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려고 나를 찾아왔다. 동호인 테니스에 대한 논문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생활체육 테니스 수준이 굉장히 높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줬다”라며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동시에 그는 테니스 발전을 위한 쓴 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최근 테니스를 즐기는 젊은이도 많이 생기고 생활체육도 발전하고 있다. 엘리트 선수들이 잘하고 있지만 더욱더 정진해 투어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소식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또한 서울에서 주말에 테니스 코트를 대여하기는 하늘에 별따기다. 테니스인들이 나서 더 많은 코트가 생길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한다”라고 전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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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킹제가 안착되면서 동호인들에게는 더 크고 다양한 대회가 필요했다. 때마침 당시 지방자치제도가 활성화 되면서 전국대회를 개최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큰 대회를 후원해 줄 기업도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성 회장은 직접 발벗고 나서 기업을 돌아다니며 대회 후원을 받기 위한 설득에 나섰다.
 
그는 “KATA도 자금난과 함께 대회가 많이 줄어들면서 고난을 걷던 시기가 있었다. 테니스가 귀족 스포츠인 만큼 기업 수뇌부에서는 테니스를 즐겨 했고 평소 인맥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았기에 직접 나서 그들을 설득했다”라고 말했다.
 
물론 무작정 찾아가 기업을 설득한다고 그들이 후원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 회장은 어떻게 스폰서 관계를 맺고 많은 전국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평상시에 그가 인맥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으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먼저 베풀면 된다. 가끔이더라도 연락을 이어가면서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움을 주고 신경을 써주는 것. 그것은 절대 손해 보는 행동이 아니다. 어떤 이익을 얻기 보다는 진심으로 테니스를 좋아하는 마음과 함께 그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민다면 이들도 내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 것이다. 비결이라기 보다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내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도움을 주지 않는다. 먼저 마음을 열고 그들에게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면 분명 나에게 돌아온다”라고 말했다.
 
성 회장의 이러한 인맥 관리는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한 것이었다. 항상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의 인생관과 가장 부합하는 이야기이며 그가 직접 증명한 삶의 지혜이다.
 
어려움을 이겨낸 행복한 미소, 그가 바라는 K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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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TA의 수장으로서 수많은 대회를 개최하고 꾸준히 동호인대회 정상권에 위치한 성 회장에 대해 찬사의 목소리도 있었겠지만 한때는 시기와 질투도 있었다.
 
그는 “안 좋은 이야기가 흘러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속앓이를 많이 했다. 단지 테니스가 좋아서 즐기고 더 많은 대회 개최를 위해 노력했지만 나에 대해 좋지 못한 목소리가 들릴 때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파트너를 잘 만나 우승을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응원을 해주시는 분들도 분명 존재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 시기와 질투도 세월이 해결해 주기 마련이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언젠가 모두 잘 풀리는 날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시기와 질투들이 지금은 많이 희석되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의 미소는 이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들만이 지을 수 있는 행복한 미소였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마음에 어려움을 이겨내고 많은 것을 이루어낸 KATA의 수장 성기춘 회장. 그는 KATA가 동호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남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그는 KATA에 대해 “테니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와서 즐거운 표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 언제든 대회에 출전해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 KATA가 특별한 의미로 기억되기 보다 단지 동호인들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지금처럼 앞으로도 남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지금까지 단체의 수장이자 테니스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살아오다 보니 어느덧 성 회장도 칠순이 됐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전히 그의 가슴은 젊은 사람 못지 않게 뜨겁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정작 그는 이미 종착역에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제 아무리 길어봐야 5년이다. 2, 3년 안에는 내려놓고 동네에서 테니스나 하면서 살고 싶다. 물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손길을 내밀겠지만 이제 내려 놓을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나보다 더 잘 해내고 뛰어난 누군가가 나타나 테니스가 더욱 발전했으면 좋겠다. 후회도 있었지만 이제 내 의무가 끝나고 나면 홀가분 할 것도 같다. 하하”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항상 동호인 테니스 발전에 힘썼던 성기춘 회장. 그가 계속 지금 자리에 머물러주기를 바라고 있지만 그의 말처럼 어쩌면 종착역이 얼마 안 남았을지도 모른다.
 
아마추어 테니스 역사의 중심이었던 그는 남은 기간 동안도 지금까지처럼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이제 우리들은 그가 보여줬던 열정과 베푸는 마음을 기억하고 계속해서 배워나가야 한다.
 
비록 그는 2, 3년을 이야기 했지만 앞으로도 더 많은 시간을 동호인들과 함께 했으면 하는 마음과 함께 그의 테니스 인생에 박수를 보내며 언제나처럼 테니스와 함께하는 그를 응원해 본다.
 
글, 사진= 김진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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