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오픈 이야기②]프랑스오픈은 왜 롤랑가로스로 ...

[테니스코리아= 김성준 객원기자]4대 그랜드슬램의 경기장이나 대회 이름은 대체로 자국의 유명 테니스 선수나 테니스 발전에 공로가 큰 사람의 이름을 따서 짓는다. 예를 들어 US오픈에는 아서 애시 스타디움이 있고 호주오픈에는 로드 레이버 아레나와 마가렛 코트 아레나가 있다. 프랑스오픈에도 필립 샤트리에 코트와 수잔 랑랑 코트가 있다. 프랑스오픈은 특이하게도 프랑스오픈(French Open)이라는 이름만큼 롤랑가로스(Roland Garros)로도 많이 불린다. 프랑스오픈의 홈페이지와 SNS도 모두 롤랑가로스로 표기되어 있다. 파라솔, 모자, 가방 등 프랑스오픈 기념품들에도 모두 롤랑가로스가 새겨져 있다. 이쯤 되면 롤랑가로스는 분명 테니스와 관련이 깊은 인물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실제로 롤랑가로스(1888~1918)는 제1차 세계대전의 전투비행사였던 프랑스의 전쟁영웅이다. 그는 개척자로서 지중해를 비행기로 횡단한 첫 사람이지만 정작 테니스와는 전혀 무관한 인물이다. 롤랑가로스는 누구인가롤랑가로스는 인도양 마다가스카르섬 옆의 프랑스령인 리유니온이라는 작은 섬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의 경영전문대학원 HEC 파리에서 공부했다. 현재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경영대학원 중 하나인 이 곳에서 롤랑가로스는 평생의 친구를 만났다. 훗날 롤랑가로스 스타디움 건설의 책임자가 된 에밀 레저다. 1909년 롤랑가로스는 19세 때 처음 비행을 시작했다. 1910년에 비행사 자격증을 얻은 롤랑가로스는 1913년에 대서양을 무착륙비행으로 횡단한 첫 비행사로 이름을 알렸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그는 프랑스 공군에 입대해 서부전선에서 복무했다. 같은 해 8월 3일, 롤랑가로스는 독일 전선을 날며 독일 비행기를 파괴시키고 두 명의독일 비행사를쓰러뜨리며 세계 역사에서 최초의 비행 전투를 한 사람으로 기록됐다. 1915년 4월 18일 자신이 근무했던 비행기 제조사에서 새로 개발한 비행기를 타고 플란더스 지방의 독일 상공을 날고 있던 롤랑가로스는 독일군이 쏜 총에 맞아 비행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롤랑가로스는 비행기가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계속 총을 쏘며 저항했다. 비행기가 추락한 후 그는 도주하려 했지만 결국 독일군의 포로가 됐다. 롤랑가로스는 오랜 시도 끝에 3년 뒤인 1918년 2월 14일 독일의 포로수용소에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다. 탈출 후 다시 공군에 자원 입대한 롤랑가로스는 1918년 10월 5일 부지에르 전투에 참전해 결국 전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한 달 전, 그의 30번 째 생일 하루 전이었다. 프랑스오픈에 자신의 이름을 남긴비행사 롤랑가로스 프랑스오픈은 왜 롤랑가로스의 이름이 붙여졌는가프랑스오픈은 1891년에 처음 개최됐다. 처음 34년 동안은 오직 프랑스 클럽 선수들에게만 출전권이 주어졌고 1925년에 이르러서야 외국 선수들에게 개방됐다. 초기 프랑스오픈은 주경기장이 없어 파리의 여러 장소에서 진행됐는데 1928년 프랑스와 미국의 데이비스컵 결승전을 유치하면서 경기장 건설에 대한 여론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는 당시 프랑스 테니스가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당시 프랑스는 ‘사총사(Four Musketeers)’로 불리는 테니스 4인방이 있었다. 르네 라코스테(1904~1996), 앙리 코쉐(1901~1996), 장 보로트라(1898~1994), 자크 브루농(1895~1978)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프랑스의 6년 연속(1927~1932년) 데이비스컵 우승을 만들어냈고 1920년대 후반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 총 20차례 그랜드슬램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들의 활약은 프랑스에 테니스 붐을 일으켰고 프랑스오픈 스타디움 건설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당시 스타디움 건설의 책임자였던 에밀 레저는 경기장의 이름을 그의 친구이자 전쟁영웅인 롤랑가로스로 지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1928년은 롤랑가로스가 전사한 지 1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했다. 1968년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가 사라진 오픈시대(Open Era)가 되기 전까지 프랑스오픈은 롤랑가로스라는 명칭보다는 프랑스국제테니스대회로 알려져 있었다. 이후 프랑스테니스협회장을 역임한 필립 샤트리에가 대회를 확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롤랑가로스라는 명칭이 자리를 잡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롤랑가로스는 인도양의 작은 섬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명문학교에서 공부할 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졌고 평탄한 삶이 보장됐다. 그럼에도 그는 당시에는 생소했던 비행사가 되려는 도전 정신이 있었고 전쟁 중 포로로 잡히면서도 탈출에 성공해 다시 참전하는 투지와 용기를 지녔다. 그를 영원히 기억하고자 한 친구에 의해 롤랑가로스는 프랑스오픈의 대명사로 전세계에 이름을 남겼다. 글= 김성준 객원기자, 사진= GettyImages/이매진스 지금 테니스코리아 정기구독하면 선물이 와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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